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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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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나의 작고 소중한 한 칸짜리 방에 몸을 담고 한껏 구겨집니다.
 
여름이면 털털털 돌아가는 선풍기… 겨울엔 외풍이 심해 전기장판 밖으론 한 발짝도 나오기 싫어지는 이곳…
 
그래도 누가 뭐래도 나에겐 가장 안락한 피난처입니다.
 
이불 밖은 위험한걸요!
 
오늘의 기상은 최악.
 
우중충한 게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습니다.
 
폭우 예보가 있었습니다.
 
다행일까요?
 
당신은 오늘따라 일도, 약속도 전혀 없습니다.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나요?
 
명:(창 밖으로 날씨 살피더니 창문 닫고는 침대에 널브러지며 무표정으로 멍이나 때리고 있다)
 
막상 집콕을 하기로 마음 먹으니 할 일이 없는 것 같네요.
 
컴퓨터 게임이라도 하며 킬링타임을 가져볼까요?
 
명:(날씨도 참 우중충하네... 눈 몇 번 느리게 감았다 뜨더니 몸 일으켜선 컴퓨터 앞에 앉아 하던 게임이라도 켜봅니다)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 부팅을 하자마자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핸드폰에 손을 뻗고 나면 벨소리에 동반된 요란한 진동이 손 안을 울립니다.
 
그리고 그 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댑니다.
 
손 안의 진동이 뚝, 전화가 받기도 전에 끊깁니다.
 
동시에 초인종 소리도 잠잠해집니다.
 
한 순간에 소음이 그득했던 방 안이 일시에 고요해집니다.
 
잠시간의 적막이,
 
깨집니다.
 
핸드폰 액정에 미친 듯이 문자가 날아듭니다.
 
발신자는 판?입니다.
 
판:절대
 
그 때, 문 너머가 다시 시끄러워집니다.
 
문을 부서져라 두드려대며 당신의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의 목소리는,
 
판:명! 명! 나야! 문 열어줘, 급해! 제발!
 
당신이 아는 판¿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단순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이유모를 위화감이 훅 끼칩니다.
 
그도 그럴 게…
 
시야 닿는 자리에서 컴퓨터 액정이 깜빡입니다.
 
당신이 하지도 않는 SNS 페이지의 입력창이 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명: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온갖 상황이 한꺼번에 일어난 한복판에 놓인 당신.
 
판?에게 문자 답을 보낼까요?
 
명:뭔소리야
 
판?은 문자를 통해 당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습니다.
 
그래요, SNS와 같은 내용이네요.
 
당신이 답장을 보내면 전송 성공 마크가 뜹니다.
 
...
 
잠시 방 안에 정적이 흐릅니다.
 
그러고보니 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멎었네요.
 
나의 작고 소중한 한 칸 짜리 방은 고즈넉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당신의 숨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릴만큼.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운 SNS 창에 쭉쭉 글이 뜨기 시작합니다.
 
개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판의 계정? 입니다.
 
판이 SNS 같은 걸 했던가요?
 
아니 그보다 나야말로 SNS를 했던가?
 
판을 아니 그보다 나야말로 SNS를 했던가?
 
판을 팔로우하고 있다고요?
 
아니, 아니. 지금 이런 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은 답장을 분명히 보냈을텐데요.
 
핸드폰을 확인해보면 메세지 전송 실패 마크가 떠있는 걸 발견합니다.
 
인터넷도 끊겨있고, 와이파이는 잡히지 않고, 통화권 이탈 구역으로 나오네요.
 
분명히 조금 전에 답장이 갔었잖아요?
 
명: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인터넷도 전화도 되지 않는 핸드폰에 갑자기 깜빡, 깜빡, 불이 들어옵니다.
 
그리곤 제멋대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핸드폰 액정 가득히 빼곡하게 번호가 차오르며 소리가 들려옵니다.
 
끊어도 전화는 끊기지 않습니다.
 
소리가 점점 바깥으로 커집니다.
 
고막을 찢을 듯 후벼팝니다.
 
마구 비명을 질러댑니다.
 
뚝.
 
소리가 멎습니다.
 
다시 전화벨이 울립니다.
 
전화를 받나요, 명?
 
명:(뭔... 인상 찌푸리며 전화 받아봅니다)
 
고요한 적막만이 찾아올 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통화권 이탈 구역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
 
전화는 이만 내려놓고 상황을 정리해볼까요.
 
문 너머가 신경쓰이지 않나요?
 
명:(구겨질대로 구겨진 미간 더 구기며 핸드폰 내려두고 문 쪽으로 다가가봅니다)
 
당신이 문 앞에 섰습니다.
 
인터폰으로 확인해 볼 수도 혹은 방범 렌즈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겠네요.
 
그것도 아니면 판?의 메시지를 무시한 채 문을 연다던가?
 
명:(그냥 이걸 확 열어버려... 방범 렌즈를 통해 밖에 무언가 있는지 확인해봅니다)
 
어라?
 
텅 빈 복도가 보일 뿐입니다.
 
...
 
먹통이 된 핸드폰에 황망해한 것도 잠시,
 
문자가 몇 통 더 날아듭니다.
 
여전히 SNS는 번잡한 RT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 아이돌, 영화, 경제, 애니프사 등… 종류도 다양한데다 정신 없기까지 합니다.
 
SNS 입력창이 당신을 기다리는 것처럼 깜빡입니다.
(메세지가 전송이 되나 확인해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메세지는 여전히 전송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명:(뭔 이딴... 컴퓨터 앞으로 가서는 SNS 입력창에 타자쳐서 트윗해봅니다)
 
SNS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네요.
 
당신이 뭐라도 써 올리고 나면,
 
해당 트윗이 미친듯이 RT되기 시작합니다.
 
정말 미친듯이요.
 
금세 1.0K를 넘어 4.3K, 7.1K, 9.9K…
 
온갖 멘션과 인용알티가 들어오고, 비공개 계정 멘션이 달리며, 비공개 계정 인용도 늘어만 갑니다.
 
이런 아무것도 아닌 내용이 이렇게 단 시간에 이만큼 공유된다고요?
 
명: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글이 끊임없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개중 하나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자세히 볼 틈도 없이, 계속해서 알림이 울리고 창이 빠르게 리셋됩니다.
 
명: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에 딱 걸려드는 글이 있습니다.
 
근래 인기몰이 중인 괴담에 대한 이야기 같네요.
 
명:(무슨 내용인지 확인해봅니다)
 
링크를 누르면 새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당신이 내용을 다 읽고나면 컴퓨터가 펑! 터지는 소릴 내며 완전히 죽고 맙니다.
 
이후로는 무슨 짓을 해도 컴퓨터는 다시 켜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확인해보니…
 
명: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방 안은 다시 적막에 휩싸입니다.
 
당신은 나의 가장 '안락한' 피난처에 남아 있습니다.
 
명: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눈 앞이 어지럽게 흔들립니다.
 
머리를 쪼이는 듯한 둔통이 느껴집니다.
 
...
 
곧 둔통이 가라앉습니다.
 
당신은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납니다.
 
폭우 예보가 맞았던 모양입니다.
 
창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어느 틈에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빗소리 탓인지 주변이 낯설고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살풍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중한 나의 한 칸짜리 방을 둘러봅니다.
 
정면으로 오랫동안 써서 귀퉁이가 낡은 책상과 책장이 나란히 보입니다.
 
책상 바로 위 쪽으론 커다란 두 쪽짜리 창문이 트여 있고요.
 
비가 한창 내리는 중이네요.
 
침대는 당신이 막 몸을 일으킨 곳입니다.
 
머리 위쪽으로 옷장이 있고 옆으론 화장실 문이 있습니다.
 
외에 원룸이 다 그렇듯 한 쪽으로 싱크대와 개수대, 작은 냉장고, 세탁기가 조건으로 따라왔었죠.
 
이 가격에 이런 데 못 구한다는 부동산 중개업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선하네요.
 
명:(... 언제 잠 들었더라. 일어난 침대에 시선 둡니다)
 
당신이 막 몸을 일으킨 자리입니다.
 
그나저나 언제 침대까지 와서 누웠더라…?
 
엉망으로 구겨진 이불이 보이고 침대 옆 벽면에 붙은 달력이 보입니다.
 
명:(구겨진 이불의 주름이나 슥슥 펴봅니다)
 
명: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작은 열쇠를 찾습니다.
 
어딘가 사용할 곳이 있을까요?
 
명:(일단 열쇠 주워 들어 주머니에 넣고, 침대 옆 벽면에 붙은 달력으로 시선 옮깁니다)
 
명:(뭔... 이런 짓을 했던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창문으로 다가가봅니다)
 
낙뢰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비 내리는 풍광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은 역시 밖에 나가지 말고 방에 박혀있는 게 좋겠어요.
 
이불 밖은 위험해!
 
명:(참 더러운 날씨네. 창문이나 슬쩍 열어봅니다)
 
그때,
 
돌연 바깥에서 누군가 손목을 확 끌어당깁니다.
 
명:(놀라선 제 팔 몸 쪽으로 훅 당깁니다)
 
가까스로 잡아 버텨내고 바깥을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금 그 느낌은 뭐였죠?
 
...
 
그런데 손목에 푸르게 손자국이 남습니다.
 
명: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명:드디어 미친건가... (중얼거리며 괜히 제 손목 감싸 쓸고는, 고개 내려 책상 바라봅니다)
 
책상 위에는 망가진 컴퓨터와 사용감이 있는 낡은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책상 상판 아래로 한 칸 짜리 서랍이 붙어있습니다.
 
명:(망가진 컴퓨터나 툭툭 쳐봅니다. 산지 얼마나 됐다고...)
 
무슨 수를 써도 다시 켜지지 않습니다. 완전히 망가졌나봐요.
 
명:(미간 좁히며 낡은 노트나 들어봅니다)
 
이건 당신의 노트입니다.
 
일기장으로 사용하는 노트잖아요?
 
몇 년이나 사용해왔기 때문에 겉장이 다 나달해져있습니다.
 
그런데 펼쳐서 장을 넘기다보면, 어라…
 
2021. 1. 11.
 
2021. 3. 2.
 
2021. 4. 17.
 
2021. 5. 20.
 
2021. 6. 30.
 
2021. 8. 21.
 
2021. 10. 19.
 
...
 
...
 
2022. 3. 12.
 
페이지는 특정 날짜에서 끝이 납니다.
 
그런데 날짜는 쓰여있는데, 이하 내용은 하얗게 비어있어요.
 
단 한 페이지도, 단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날짜를 쓴 글씨체는 당신의 것이 분명합니다.
 
마지막에 쓰여진 날짜가 오늘 날짜인 것을 당신을 압니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에 오늘 날짜는 왜 쓰여있을까요.
 
규칙적으로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미리 일기 쓸 날을 정해둘 리 없잖아요?
 
명:(신경질 적으로 노트 덮고는 한 칸 짜리 서랍이나 열어보려 합니다)
 
덜컹, 서랍은 열리지 않습니다.
 
자세히보니 작은 열쇠구멍이 나 있습니다.
 
명:(주머니에서 열쇠 꺼내어 구멍에 넣고 돌려봅니다)
 
서랍 안에서 양초 4개와 부적 6장을 습득합니다.
 
이런 것들이 당신의 서랍에…?
 
명:대체 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양초와 부적 들어 살펴봅니다. 이딴 게 왜 내 집에 있는지...)
 
하얗고 곧은 평범한 양초입니다.
 
사용하려면 불을 붙일 수단이 필요하겠네요.
 
노란 종이에 새빨간 붓글씨로 무언가 쓰여져있습니다.
 
보는 것 만으로 섬칫합니다.
 
6장 위로 각기 다른 한자가 쓰여 있습니다.
 
명: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각각 물(水), 불(花), 바람(風), 흙(土), 빛(光), 어둠(暗)을 뜻하는 한자임을 확인합니다.
 
명:(대충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옆에 놓인 책장으로 시선 돌립니다)
 
책이 꽤 빼곡하게 꽂혀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책들이 생물학,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이 원래 이런 데에 관심이 있었던가요?
 
명:
자료조사
기준치: 70/35/14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중철로 엮어 표지에 실험일지라 적어둔 파일을 발견합니다.
 
명:(여기가 내 집은 맞는지. 실험일지라 적힌 파일 꺼내들어 펼쳐봅니다)
 
페이지마다 날짜가 기입돼있고 옆에 붉은 글씨로 성공/실패 여부를 기록해두었습니다.
 
글씨체는 낯섭니다. 누가 쓴 건지 모르겠네요.
 
2021. 1. 11. 실패
 
2021. 3. 2. 실패
 
2021. 4. 17. 실패
 
2021. 5. 20. 실패
 
2021. 6. 30. 실패
 
2021. 8. 21. 실패
 
2021. 10. 19. 실패
 
...
 
허나 넘기고 넘겨도 실패 만 쓰여있을 뿐 성공이 쓰여진 날이 없습니다.
 
게다가 구체적인 '실험' 내용이나 대상에 대한 건 단 한 줄도 기록되어있지 않네요.
 
새빨간 글씨로 적힌 실패를 한 페이지 더 넘기면,
 
...
 
...
 
...
 
...
 
다시 날짜와 실패의 기록이 연잇습니다.
 
...
 
...
 
2022. 3. 12 [ ]
 
페이지가 끝이 납니다.
 
특정 날짜가 마지막으로 기입돼있고, 칸이 비어있습니다.
 
명: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실험 일지에 기록된 날짜들과 낡은 노트에 기록된 날짜가 전부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쓰여진 날짜가 오늘 날짜임을 당신은 압니다.
 
명:미쳤나... (실험일지 다시 꽂아두고는 방 둘러보다 옷장이나 열어봅니다)
 
덜컹, 옷장 문이 열립니다.
 
옷장 안에 걸린 옷은 단 한 벌 뿐입니다.
 
사시사철에 맞춰 빼곡하게 옷장을 채우던 당신의 옷들은 다 어디로 갔죠?
 
...
 
…어라? 이거 판의 외투잖아요. 분명히 기억합니다.
 
판이 즐겨입는 옷이라서 약속 때마다 몇 번이나 입고 나왔는걸요.
 
당신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을 한 적도 있었고요.
 
옷 주머니를 뒤적이면 안에서 성냥 한 갑을 발견합니다.
 
옷이 걸려있던 옷장 벽 쪽에 새빨간 손자국을 발견합니다.
 
손자국 크기가 작은 것으로 보아… 어린아이의 손자국 같아요.
 
명:... 뭐야? (여전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인상 잔뜩 찌푸리고는 성냥이나 주머니에 찔러 넣습니다. 정신 좀 차리기위해 세수라도 하려 화장실로 향합니다)
 
쾅!!!
 
닫힌 옷장 문 위에 직전 옷장 안에서본 새빨간 아이 손자국이 찍혀있습니다.
 
근데... 하나가 아니네요?
 
...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문을 열어젖히면 소리가 똑, 또옥. 적막 속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울릴 뿐입니다.
 
…잘못 들은 걸까요?
 
거울로 검은 형체가 휙 스쳐갑니다.
 
…거울을 다시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에이, 잘못 본 거겠죠.
 
수챗구멍에 머리카락이 걸린 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걸려있는 머리카락은 흰색입니다.
 
...
 
아무튼 저걸 그냥 뒀다간 하수구가 막히고 말 겁니다.
 
뚫으려면 한참 고생할 거고요.
 
지금이라도 치우는게 어떨까요?
 
명:... 드디어 미친 게 맞나본데. (마른세수 한 번 하고는 걸려있는 머리카락이나 들어 치웁니다. 누구 머리색이랑 똑같네.)
 
치우려하면 질질질 질질질 질질질질 머리카락이 끝도 없이 끌려 올라옵니다.
 
역한 냄새가 코 끝을 찔러옵니다.
 
계속 잡아당길 건가요?
 
머리카락에 무언가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머리카락에 무언가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합니다.
 
쾅!!!
 
확인하자마자 왈칵 붉은 액체가 수챗구멍에서 솟구칩니다.
 
당신의 발을 적시고 발목까지 금세 차오릅니다.
 
귀를 찢는 듯한 비명이 수챗구멍 안 쪽에서 들려옵니다.
 
깔깔대는 웃음이 겹칩니다.
 
...
 
당신은 정신을 잃고 맙니다.
 
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습니다.
 
화장실 안은 깨끗하며 아무런 흔적도 없습니다.
 
그나저나 명, 당신 뺨에 뭔가 묻은 것 같은데요.
 
확인해볼까요?
 
명:(헛웃음 내뱉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확인해봅니다)
 
당신이 거울을 보면 뺨에 붉은 손자국이 찍힌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눈 앞이 부옇게 흔들리며 어지럼증이 찾아듭니다.
 
머리꼭지 한 귀퉁이를 꾹 비틀어 짜는듯한 두통이 저밉니다.
 
하얀 방이 다시 눈 앞에 어른거립니다.
 
곧 둔통이 가라앉습니다.
 
...
 
당신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듭니다.
 
창 밖을 지나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칩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사람이 멈춰섭니다.
 
기이할 정도로 시뻘겋게 충혈된 눈이 툭 튀어나와 흰자위를 내보인 채 당신을 쳐다봅니다.
 
오싹 소름이 돋습니다.
 
기분 나쁘네요.
 
왜 남의 집 앞에 서서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는거죠?
 
명:... 여기 3층 화장실이잖아... (눈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신경질적인 어조로 작게 욕짓거리 내뱉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사람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
 
낙뢰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깜빡, 깜빡, 형광등이 점멸하다가 픽 나가버립니다.
 
방 안이 어둠에 잠깁니다.
 
스위치를 건드려도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위치를 건드려도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전기기며 화장실 불도 마찬가집니다.
 
정전인 것 같네요.
 
잠잠했던 초인종이 다시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쾅쾅! 쾅! 문을 두드립니다.
 
문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판¿:명! 명! 빨리, 문 좀 열어줘!
부탁이야, 급해!
제발!!! 그것이 날 쫓아오고 있어. 거의 다 왔어. 이러다 죽고 말거야!
명!!!!!!!!!! 명!!!!!!!!!
살려줘, 제발!!
 
명:아깐 열지 말라며 저 미친새끼가... (잔뜩 표정 일그러뜨리고 인터폰 쪽으로 향해 현관문 밖 확인해봅니다)
 
이번엔 문자가 아닙니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습니다.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판입니다.
 
전화를 받나요?
 
명:통화권 이탈 구역이라며... (머리 쓸어넘기더니 한숨 푹 내쉬며 전화 받아봅니다)
 
전화를 받으면 판?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판?:왔지?
절대 열어주지 마. 내가 아니야.
혼빙 봤지? 무슨 일이 있어도 도중에 문을 열면 안 돼.
 
명:내 목소리 들리냐?
 
판? 이 무어라 설명을 하지만 지지직 지지지지직 전파가 불안정한지 소리가 몇 겹으로 겹치고 뭉개집니다.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판?:너■ ■■■■해서 ■■■■■잖아. 그러니까 ■■■■■.
 
명:니 목소리 하나도 안 들려. 내가 뭘 했다고?
 
명:전파가 불안정... 할 리가 있냐? 뭔진 모르겠지만 하나도 안 들려! 문자로 보내.
 
판¿은 위험이 목적에 닥친 사람처럼 미친듯이 고함을 지르며
 
손잡이를 잡아 흔들고 어떻게든 문을 열고자 발악을 합니다.
 
판이 저렇게 겁에 질린 건 처음 봅니다.
 
판¿:시발!!!! 문 열어!!!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귀에 꽂혀듭니다.
 
그와 동시에 내내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눌러대던 소리가 뚝 멎는가 싶더니…
 
문 너머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찢어집니다.
 
전화 너머의 목소리도 흠칫 숨을 삼키는 듯했습니다.
 
뚝.
 
죽음같은 정적이 찾아옵니다.
 
빗소리만 귓전에 쏟아들고 불온한 감각이 손끝 발끝을 타고 기어오릅니다.
 
너무도 선명한 비명소리였습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판의 비명소리였어요.
 
대체,
 
명: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귓전에 구원같은 목소리가 닿습니다.
 
판? 이 말을 더듬습니다.
 
판?:그, 그래도, 절대, 열면 안 돼.
 
으름장을 놓는군요.
 
그래도 기뻐하세요, 명!
 
적어도 판의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아직은 실존하고 있잖아요.
 
문에 달린 외시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명:... 이유라도 좀 말하고 열지 말라고 하던지. (잔뜩 짜증난 투로 말하며 외시경으로 내다봅니다)
 
심박이 거세게 들뜁니다.
 
문 밖으로 소리가 들리면 어쩌나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심장이 뛰다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외시경을 내다보면…
 
보는 순간 촥! 눈 앞에 붉은 액체가 흩뿌려집니다.
 
시야가 붉게 물듭니다.
 
한 달음에 훅 가까워진 비린내가 코 끝에 진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당신은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얼굴을 타고 액체가 뚝뚝 흘러내립니다.
 
어느새 문이 열려있습니다.
 
손끝발끝에 매달리던 불온한 감각은 이제 당신의 손과 발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구토감이 치밉니다.
 
보려해도 보이는 게 없습니다.
 
 
 
손목
 
발목
 
팔뚝
 
다리
 
무언가가 서서히 당신의 목을 감싸쥡니다.
 
뜨겁다고 생각했건만 한없이 선득합니다.
 
오한이 일고 몸이 덜덜 떨립니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숨이 서서히 조여듭니다.
 
어느샌가 당신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맙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습한 여름이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고 어느새 당신은 땀과 피로 흠뻑 젖습니다.
 
어지러워요.
 
의식을 잃습니다.
 
매미 울음이 당신을 깨웁니다.
 
눈을 떠올립니다.
 
눈을 떠올립니다.
 
가장 먼저 하늘을 에워싼 나뭇잎 그늘이 보이고, 너머로 쨍하게 부서지는 여름날의 햇살이 비쳐듭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마를 쓸어주는 손길이 있습니다.
 
판이 당신을 이상하다는 듯 내려다봅니다.
 
판:괜찮아? 더위 먹었나 보네~ 깜짝 놀랐잖아~
 
아, 그래요. 무덥고 화창한 여름날입니다.
 
비가 올 기미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아요.
 
판과 약속 장소에 나왔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당신의 판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습니다.
 
판의 말에 따르면 함께 걷던 당신이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네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 뒤 다시 공원을 걷기 시작합니다.
 
길을 가다가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그늘에 들어와 앉아 분수도 구경하고, 봉오리를 활짝 벌린 장미 꽃밭에서 사진도 찍습니다.
 
뭐, 당신은 거의 끌려다니다시피 였지만요.
 
무더울만큼 쨍한 날씨지만 바람은 덥지않아 제법 기분이 좋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이 부십니다.
 
세상은 한없이 넓고 평화롭습니다.
 
분수 앞에 마주 서서 판은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애타는 마음으로 지금을 기다려왔는지 모를 거라며 광기라도 비치듯 한껏 기쁨에 젖은 희열을 드러냅니다.
 
그리곤 말을 보태갈수록 서서히 기이한 면모가 비치기 시작합니다.
 
집착이라는 단어로는 불충합니다.
 
그보다 훨씬 깊고, 집요하고, 숨이 막히는…
 
판:오랫동안 오늘 만을 기다려왔어.
오늘이 오지 않을까 봐. 너를 다시 만날 수 없을까 봐. ... 나는 너무 애가 타서.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려왔는지 너는 알 수 없을 걸? 매일매일 미칠 것 같았어. 모든 게 다 소용없게 될 것 같았어.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든 적 없어.
네가 내 마음을 알까?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음~ 한 때는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긴 했지~? 참 바보 같지 않냐? 인간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 그런 생물이거든. 넌 조금도 모를 거야!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판은 당신의 양 손을 덥썩 그러쥡니다.
 
엄청난 악력입니다.
 
뿌리칠 수 없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찌는 듯한 더위가 살갗에 들러붙습니다.
 
속이 뒤틀리고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다시 더위를 먹는 걸까요?
 
다시 더위를 먹는 걸까요?
 
도저히 이 순간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쯤…
 
판:걱정하지 마~
 
살이 녹아 피와 뒤섞이고 안구가 흘러내려 투둑, 당신의 손목에 떨어졌다간 바닥을 구릅니다.
 
소름끼치도록 생생한 감촉이 손목에 남습니다.
 
끈적한 피와 체액이 길게 늘어집니다.
 
판:내가 전부 다, 할게.
 
하지만 그의 말처럼 정말로, 걱정할 필요 없어요, 명!
 
왜냐하면
 
판:내 말 잘 기억해. 옷장 바닥을 들춰봐.
 
당신도 녹아내리기 시작했거든요.
 
생살이 고온에 녹아 절절 늘어지는 감각은 감히 '고통'이라는 단어에 비견할 수 없습니다.
 
내장이 녹고 속이 다 헐어갑니다.
 
살가죽 아래를 다 긁어내어 꼼꼼히 목숨을 짓이깁니다.
 
그런 당신을 보고 판이 웃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애도하는 웃음소리가 귓전에 매어달렸으나 더이상 당신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습니다.
 
고막이 녹아버렸나봐요.
 
하지만 괜찮아요.
 
더이상은 눈 앞도 보이지 않거든요.
 
몸을 뒤틀 필요도 없어요.
 
곤죽이 된 당신은 이제 의식으로만 남아…
 
명:
관찰력
기준치: 75/37/15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두 사람이 다 녹은 자리에 보이는 게 있습니다.
 
입니다.
 
명: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어지럼증이 덮쳐들어 순간적으로 몸이 무너집니다.
 
두통이 머리를 조이고 뇌 귀퉁이를 긁어내듯 기이한 감각이 거슬립니다.
 
곧 두통과 기이한 감각이 가라앉습니다.
 
눈을 뜹니다.
 
네모진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익숙한 형광등은 여전히 불이 꺼진 채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한 칸짜리 방에서 눈을 뜹니다.
 
또 언제 침대까지 기어온 건지 어디서부터 꿈인지 어디까지 현실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온 사지가 멀쩡하며, 얼굴과 손도 깨끗한 상태입니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전신 거울에 대충 걸어뒀던 옷이 바닥에 툭 떨어집니다.
 
거울 쪽을 본 순간 당신의 시선이 붙박이고 맙니다.
 
시선이 붙박이고 맙니다.
 
눈을 떼려고 해도 도무지 돌릴 수 없습니다.
 
방 귀퉁이에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얼굴이 창백한 사람의 형체가 희끄무레하게 서있는 게 보입니다.
 
당신은 단번에 알아봅니다.
 
저 사람, 아까 창 밖에 서있던 그 사람이에요.
 
벌어진 두 눈이 텅 비어있습니다.
 
벌어진 두 눈이 텅 비어있습니다.
 
누군가 강제로 눈을 후벼판 것처럼 붉게 불거진 빈 공간에 구더기와 잔벌레들이 들끓습니다.
 
그가 점점 당신에게 다가오는 게 보입니다.
 
점점, 점점,
 
책상을 지나,
 
등 뒤까지.
 
그리곤 꽈아아아악 당신을 뒤에서 감싸 끌어안으며 얼굴이 당신의 얼굴 바로 옆에 달라붙습니다.
 
그리곤 꽈아아아악 당신을 뒤에서 감싸 끌어안으며 얼굴이 당신의 얼굴 바로 옆에 달라붙습니다.
 
온 몸에 오한이듭니다.
 
몸이 떨리건만 여전히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TV 노이즈가 귓전을 채우고
 
벌레 소리가 뒤섞이고
 
속닥임들이 엉켜 당신의 귓구멍을 지나 고막을 파고듭니다.
 
속닥임들이 엉켜 당신의 귓구멍을 지나 고막을 파고듭니다.
 
달라붙습니다.
 
찢어듭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선명한 마찰음이 비집었습니다.
 
입이 크게 벌어집니다.
 
귀까지 찢어져 살가죽이 너덜거리는 틈으로 구더기들이 뚝뚝 바닥에 떨어집니다.
 
날벌레와 기는 것들이 당신의 몸 위로 후두둑 떨어져내립니다.
 
그 사람의 머리가 시계방향으로 돌기 시작합니다.
 
반 이상 돌아서
 
당신의 귀 바로 옆에서 우드득,
 
하는 순간 기절합니다.
 
직후 숨을 터뜨리며 바로 깨어나면, 방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만...
 
거울 앞에 배를 뒤집고 죽은 벌레 몇 마리가 보입니다.
 
거울을 보면 마치 목을 졸린 것처럼 선명하게 손자국이 남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 뭔 이딴 개 같은 꿈을... (신경질적으로 스타일링한 머리도 다 헝클어트리며 옷장 바닥이나 들춰보려 합니다)
 
자세히 보니 옷장 바닥 귀퉁이가 어긋나있습니다.
 
바닥판을 들어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어긋난 귀퉁이 잡고 바닥판을 들어 올려봅니다)
 
아래로 더 낮은 바닥이 나타납니다.
 
이중 바닥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군요.
 
곰팡이가 슨 바닥에 귀퉁이가 닳은 종이 한 장이 놓여있습니다.
 
명:(종이 주워들어봅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걸까요?
 
당신이 저 말도 안되는 혼빙인지 뭐시긴지를 했다고요?
 
...
 
어떻게 할까요, 명?
 
...
 
딩동ㅡ딩동ㅡ
 
딩동ㅡ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미친듯이 초인종이 울립니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판¿ :명, 나야! 문 열어!
 
동시에
 
지잉, 지잉― 지이잉
 
지잉, 지잉― 지이잉
 
지잉, 지잉― 지이잉
 
지잉, 지잉― 지이잉
 
지잉, 지잉― 지이잉
 
판의 이름이 떠오릅니다.
 
전화를 받나요?
 
명:(미간 좁할대로 좁히고 전화 받습니다) 뭔 소리를 하려고. 열어주지 말라고?
 
판?:잘 알고 있네. 문, 연 거 아니지? 절대 열어선 안 돼. 절대로.
 
끝이 아닙니다.
 
망가졌던 컴퓨터가 저절로 켜집니다.
 
SNS 알림이 정신없이 쏟아집니다.
 
컴퓨터 화면이 마구 밀려 올라갑니다.
 
꺼도 소용 없습니다.
 
깜빡, 깜빡, 깜빡,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방 안의 불이 마구 점멸해대기 시작합니다.
 
쾅!!!
 
낙뢰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방 안이 하얗게 달아올랐다가 죽습니다만 상황은 무엇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낙뢰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리고 방 안이 하얗게 달아올랐다가 죽습니다만 상황은 무엇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해야합니다.
 
초조함과 두려움이 오싹하게 숨통을 조여옵니다.
 
당신은 이미 해야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명:문을 열어서 뒤지던 옷장 안에서 뒤지던... (종이 다시 한 번 훑어보더니 책상에 올려둔 부적과 양초 집어들고, 벽마다 촛불을 두며 성냥으로 불 밝히기 시작합니다)
(모근 촛불에 불을 밝힌 후, 그 위쪽으로 물과 불이 쓰여진 부적을 제외한 나머지 부적 네 개를 하나씩 붙인다) 내가 이딴 걸 했을리가. (구겨진 인상은 덤으로... 문 쪽으로 다가가 그 손잡이에 물 부적을 붙이고, 옷장에 불 부적까지 붙인다)
 
당신은 종이에 쓰여진 그대로 실행합니다.
 
명: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강한 어지럼증에 몸을 가눌 수 없습니다.
 
머리를 터뜨릴 듯한 두통에 숨이 조이기 시작합니다.
 
무언가, 자꾸만, 뇌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자꾸만, 자꾸만, 머리 귀퉁이를 파먹어 듭니다.
 
하얀 인영이 꽤 뚜렷한 윤곽을 잡습니다.
 
누구? 얼굴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울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울고 있습니다.
 
당신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우는 채로, 웃고 있습니다.
 
더없이 다정한 목소립니다.
 
옷장 문이 닫힙니다.
 
좁은 옷장 안에 몸이 간신히 끼어들어갑니다.
 
오래된 옷장 문은 틈이 꽉 닫히질 않아 미세하게 벌어진 채입니다.
 
실금처럼 밖이 내다보입니다.
 
형광등이 점멸합니다.
 
촛불이 벽을 비추며 너울거립니다.
 
핸드폰 벨은 끊임없이 울리며, 전원이 뽑힌 컴퓨터는 끊임없이 당신이 하지도 않는 SNS 알림을 울려댑니다.
 
이 환멸나는 상황을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항목을 기억합니까?
 
거친 굉음이 문 쪽에서 들려옵니다.
 
거친 굉음이 문 쪽에서 들려옵니다.
 
바깥 바람이 웅웅 불어닥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귓전을 울립니다.
 
직감합니다. 문이 떨어져나가고 만 겁니다.
 
당신의 한 칸 짜리 방을 지켜주는, 소중한 '문' 말입니다.
 
누군가의 웃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가 웃고있는 걸까요?
 
판?
 
걸음 소리가 이 편을 향해옵니다.
 
걸음 소리가 이 편을 향해옵니다.
 
기척이 가까워질수록 선득하게 목이 시려옵니다.
 
한여름에 폐쇄된 옷장 안에 숨어들어놓고, 당신은 말도 못할 한기를 느낍니다.
 
벌벌 몸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붙딪힙니다.
 
뚝.
 
온 소리가 일시에 그칩니다.
 
삽시에 적막입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이 방에 당신 하나뿐인 것처럼.
 
문 틈으로 무언가 보입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이 옷장 안을 들여다봅니다.
 
작은 동공의 새하얀 텅 빈 눈동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것이 한 번, 오른쪽으로 굴렀다가.
 
한 번, 왼쪽으로 굴렀다가.
 
이내 투둑, 녹아흐르듯 눈알이 떨어져내리더니
 
새된 웃음을 터뜨립니다.
 
쾅!
 
쾅!
 
쾅!
 
쾅!
 
당신이 몸을 의탁한 옷장을 미친듯이 두드리고 흔들어대기 시작합니다.
 
덜컹, 덜컹, 문이 어지럽게 흔들립니다.
 
점차 거세집니다.
 
이대론 옷장 문이 떨어져 나가고 말 거예요.
 
기억하세요.
 
명:(얼굴 구기며 문은 건드리지도 않고 그 반대편으로 고개 돌립니다)
 
...
 
어두컴컴했던 옷장 내부 위쪽이 희미하게 밝고, 따스하게 터오릅니다.
 
서늘한 기운을 단번에 죽이는 따스함입니다.
 
위를 보면 볼 수 있습니다.
 
옷장에 걸려있던 판의 옷에 불이 붙었습니다.
 
인지한 순간 늦습니다.
 
불길이 치솟으며 순식간에 옷장 안에 번집니다.
 
뜨겁다는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명: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끼며 고꾸라지고 맙니다.
 
격렬한 두통에 두피가 팽창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 머리통이 터져버릴지도 몰라요.
 
곤죽으로 질척질척해져서 더럽고 기괴한 꼴이 되어버릴 겁니다.
 
그런 징그럽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날,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판?
 
...
 
선명한 광경이 감은 눈 아래로 스멀스멀 기어듭니다.
 
사면의 벽,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당신의 에 온갖 기계장치를 달고 자극을 해대는…
 
판.
 
명: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
 
비로소 깨닫고 맙니다.
 
명:
SAN Roll
기준치: 0/0/0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비밀을 하나 이야기해볼까요.
 
이건 꿈이 아니랍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진실입니다.
 
당신은 마침내 현실을 마주합니다.
 
사방으로 흰 벽이 섰습니다.
 
하나같이 흰 가운을 입은 여러 사람이 오가고 있습니다.
 
벽면엔 알 수 없는 과학 기기들과 이상한 생물이 몸을 웅크린 원형 수조가 늘어섰고,
 
한 겹 유리벽 너머로는 이상한 형체들이 희끗거리며 이곳을 들여다보고 있으나 거기까진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닐 겁니다.
 
그 중 유독 당신의 의식을 잡아끄는 존재는, 단 하나 뿐이거든요.
 
다시 말해 그 사람만이 당신에게 익숙하단 이야깁니다.
 
당신을 오래도록 기다려 온 사람.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해온 사람.
 
길고 고단한 연구 끝에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된,
 
판.
 
그가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저 관망하는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일렁이는 눈이 있습니다.
 
작은 동공의 새하얀 텅 빈 눈동자와 분명히 눈이 마주쳤습니다.
 
우수에 젖은 눈.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 넘칠 것 같은 두 눈.
 
그 눈에서 무얼 읽을 수 있었나요.
 
상냥하고도 간절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판:명, 고마워. 정말 기뻐~
 
애틋하디 애틋해, 벅찬 심정을 가누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판: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우리.
 
판:이제 나랑 같이 있자. 앞으로 계속. 영원히.
 
단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당신은 그에게 어떠한 대답이든 건넬 수 있으리란 것입니다.
 
예.
 
아니오.
 
그래.
 
싫어.
 
좋아해.
 
미쳤어?
 
보고 싶었어, 나도.
 
자, 입을 여세요.
 
당신을 기다려온 판에게 대답하세요.
 
당신은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이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이든,
 
만은 할 수 있을 겁니다.
 
삶이란 의지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며 외우주의 섭리는 인류의 가치와 반드시 부합할 수 없기에.
 
이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유의미가 되는 겁니다.
 
정성스런 마음으로 꾸려놓은 이야기 속에 당신은 기회를 잡았으니까요.
 
아, 저 너머로 또 다른 통들이 보이네요.
 
그 앞에 선 이들의 얼굴에 고인 절망, 희망, 간절함, 애틋함, 슬픔, 애정, 혐오, 광기……
 
모든 것을, 당신의 판만은 돌려받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