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ison in the Wine

시나리오 링크 : https://twitter.com/Hyeonyu_CoC/status/1359466738195206150?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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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9
 
The Poison in the Wine
 
현유
 
KPC.전강필
 
PC.연시우
 
내일은 당신이 결혼하는 날입니다.
 
당연하게도 이 시대의 흔하디흔한 정략결혼입니다만,
 
특별한 점은 결혼 상대가 이 나라에서 가장 명망 높은 가문의 자제인 전강필이라는 것입니다.
 
외출을 준비하는 당신 앞에서 부모님이 들뜬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겠죠.
 
백작:약혼식을 올리고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니.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결혼식이 당장 내일인데 오늘 저녁 식사에도 초대하는 걸 보면, 네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야.
 
연시우:결혼식이 벌써 내일이라니 ... 실감이 안 나네요.
 
백작:그럴만도 하겠구나... 우리 아들이 벌써 장가라니. 이 아비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쯤에서 이 집안의 위치를 되짚어 볼까요.
 
사실은 당신 쪽도 상대만큼은 아니라도 훌륭한 귀족가였습니다.
 
물론 그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보다 훨씬 더요.
 
평생 끄떡없을 것만 같았던 가문이 난데없이 기운 적 있습니다
 
집안은 무거운 누명을 뒤집어썼고
 
사업은 줄줄이 실패하여 끝없이 추락하기만 했죠.
 
그 모든 게 한순간이었으나,
 
당신의 가족에게는 기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단번에 찾아오게 됩니다.
 
얼마 가지 않아 가문은 다시 오명을 벗고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부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가문의 몰락과 재흥의 공통점은 아무도 어찌 된 건지 모르며 눈 깜짝할 새에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전혀 짚이는 게 없습니다.
 
말도 안 되지만 신의 개입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요?
 
기껏해야 지루하단 이유로 가문 하나를 뒤집었다가 되돌려놓았다든가.
 
...
 
이상한 소리지만 그나마 이런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도 당신뿐입니다.
 
다들 당신의 부흥을 자축하기에 바쁩니다.
 
어쨌든 연씨가는 그렇게 살아남아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 힘쓰던 차였습니다.
 
석 달 전, 전씨가가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는요.
 
백작 부인:거기엔 이게 어울릴 것 같은데 달고 가렴.
 
어머니가 당신의 보석함에서 브로치를 꺼냅니다.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진 생각나지 않지만,
 
간혹 보는 저 브로치가 왠지 싫진 않네요.
 
어디 목 부근이나 가슴께같이 잘 보이는 곳에 달아둘까요?
 
연시우:(브로치를 건네받고는 가슴께에 답니다)
 
새카맣게 빛나는 브로치가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
 
이제 슬슬 바깥에 대기 중인 마차에 올라탈 시간입니다.
 
당신을 배웅하는 부모님의 기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옵니다.
 
백작:최근에는 걱정 없이 경사스러운 일뿐이군!
 
...
 
전씨가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숲이 있습니다.
 
오직 공작 저와 백작 저만을 이어주기에,
 
두 가문원들이 서로 왕래하는 데에만 이용되어 왔죠.
 
이곳의 쓸쓸하면서 고즈넉한 풍경은 늘 당신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곤 했습니다.
 
뒤돌아보면 숲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기분을요.
 
그러나 나무들이 정말로 누군가를 불렀다고 해도,
 
그저 모두가 잠깐 스치는 장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참을 달린 끝에 마차는 공작 저에 도착합니다.
 
해가 서서히 저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곧장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가면 당신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을 마주합니다.
 
사용인:연시우 님 드십니다.
 
뒤에서 울리는 사용인의 말에 필이 일어나 고개를 숙입니다.
 
찰나였지만 이쪽을 보는 얼굴이 분명 굳어 있었죠.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그는 다시 착석하고,
 
당신 또한 안내받은 자리에 앉습니다.
 
필과 대각선에 놓인 위치입니다.
 
그리고 무심코 바라본 식탁 위 만찬 사이에서 와인병 하나가 눈에 띕니다.
 
연시우: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지금까지 당신은 수많은 와인을 접했으나 저건 정말로 처음 봅니다.
 
무척 고급스럽긴 한데,
 
특별한 날이라고 주문 제작이라도 맡긴 걸까요?
 
이 상황이 긴장되는지 고작 와인인데도 신경이 쓰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찝찝한 감각은 괜히 찾아오기도 하는 거죠.
 
그 틈에 하인들을 전부 밖으로 물린 필에게서 다시 긴장한 기색이 드러납니다.
 
연시우:(어색한 분위기에... 와인병만 물끄러미 바라봐요...)
 
전강필:(네 반응 보고 피식 웃더니) 그동안 잘 지냈나요? 결혼 전에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둘만의 자리를 마련했는데... 괜찮죠?
 
연시우:네, 잘 지냈어요. 결혼식이 벌써 내일이네요... (고개 끄덕이고) 괜찮습니다.
 
전강필:그러게 말이에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내일 결혼식 준비는 모두 마쳤어요. 음, 기분은 어때요? 비록 정략결혼이지만 맺어지면 잘해봐요, 우리.
 
연시우:기분... (작게 중얼거리고는)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하고, 묘한 감정이 드네요. (...) 나쁘다는 뜻은 전혀 아니었어요. (고개 끄덕입니다)
 
전강필:그럼 됐어요. (뜸) 그나저나 그 브로치... 되게 잘 어울리네요!
 
잠시간 필이 당신의 브로치에 시선을 둡니다.
 
흘긋 본 그의 약지에는 당신과 같은 약혼반지가 있습니다.
 
내일이면 결혼반지가 저 자리를 대체하게 되겠죠
 
...
 
그대로 적막이 흘러 어색함이 감돌 즈음에,
 
그가 놓여 있던 와인병을 들어 보입니다.
 
전강필:이 자리를 위해 준비한 건데, 어때요? 같이 한 잔 해주실 래요?
 
연시우:네, 좋아요. (...) 한 번도 본 적 없는 와인인데 맛이 정말 궁금하네요.
 
필이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병을 기울이자 들어 있던 액체가 잔 속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세상 무엇보다 진하고 불길한 검붉은 색입니다.
 
그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합니다.
 
전강필:건배해요, 우리의 결혼을 위해.
 
연시우:(들어 올린 잔을 당신 쪽으로 가져가며 살짝 기울여요)
 
유리잔끼리 부딪치는 맑은소리가 울리고 필은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댑니다.
 
그를 따라 와인을 마시려는데,
 
순식간이었습니다.
 
쿵.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
 
코앞까지 다가온 필로 인해 공기가 온몸에 달라붙는 느낌과 동시에 훅 끼쳐오는 와인의 향,
 
그리고 생생하게 맞물리는 입술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반응할 겨를도 없이 벌어진 틈새로 필이 머금고 있던 와인이 흘러들어옵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지요.
 
이윽고 그가 멀어지며 참담한 눈빛을 보입니다.
 
전강필:... ... 연시우.
 
연시우:... (아무 말도 못 하고 두 눈만 깜빡이며 당신을 응시해요)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면,
 
그 순간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고 맙니다.
 
목구멍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는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에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필은 그런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입니다.
 
흐려지는 시야 틈에서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립니다.
 
전강필:저를 원망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왜 이래야만 했는지 알게 될 거에요.
이런 저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의식을 잃습니다.
 
연시우:2
 
정신이 들자마자 축축한 지하의 냉기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딱딱한 바닥에서부터 찬 기운이 그대로 당신을 타고 올라옵니다.
 
문득 아득하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바로 보이는 쇠창살 너머 혼자서 이 앞을 지키고 있던 사용인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는 흠칫 놀라다 말곤 이내 목전까지 가까워진 발소리를 향해 깍듯이 인사합니다.
 
사용인:도련님, 마침 깨어났습니다.
 
전강필:수고했어요, 이제 내가 지켜볼게.
 
그 익숙한 음성에 사용인은 자리를 뜨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건 예상했듯이 전강필입니다.
 
감정을 읽기 힘든 싸늘한 눈빛이 당신에게 꽂힙니다.
 
거기서 약간 시선을 내리면 철창을 쥔 한 손의 약혼반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당신과 마찬가지로요.
 
전강필:거의 하루 만에 깨어났네요. 궁금한 게 많을 거라는 거 알아요.
 
연시우:(하루... 나 지난건가.)
 
전강필:(...)
 
당신의 반응에 그저 빵 한 조각과 신문을 철창 안으로 밀어 넣을 뿐입니다.
 
전강필: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우리는 부부가 되었겠죠? 교회 제단 앞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비록 정략결혼일지라도 영원할 사랑을 맹세하면서 ... 근데 그거 아시나요?
난 당신이랑 결혼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어.
 
전강필은 곧바로 이곳을 떠납니다
 
평소의 그보다 훨씬 매몰차고 날카로운 모습입니다.
 
아,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필이 따랐던 그 와인이 문제였던 걸까요?
 
조금 전 그의 태도까지 더해서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이었음을 확신합니다.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1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철창에 갇혀 벽 램프 빛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무심코 몸을 살펴보니 달아두었던 브로치도 사라졌네요.
 
언제부터 잃어버렸을까요?
 
이제 당신에게 남은 건 빵조각
 
신문뿐입니다.
 
연시우:(...... 부모님이 걱정하실 텐데.)
(신문 들어서 읽어봅니다)
 
신문
 
결혼식 당일,
 
즉 오늘 아침에 발행된 대중지입니다.
 
신문 헤드라인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띕니다.
 
많은 이들이 보는 검증된 신문인 만큼,
 
당신은 적혀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믿기 어렵겠죠.
 
자신의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참히 몰살당하다니요.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연시우:(믿기지 않는지 신문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다시 읽어보다 내려둡니다...)
(옆에 있는 빵으로 시선을 옮겨요)
 
깨끗한 빵조각입니다.
 
필의 말대로라면 꼬박 하루를 굶은 거군요.
 
연시우:(건드리지도 않고 그대로 냅둡니다)
 
...
 
현실에서 붕 뜬 감각과 무력감이 몰려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유일한 탈출구인 철창의 문을 살피면 반대편에 열쇠 구멍이 나 있습니다
 
마침 바깥에 떨어져 있던 열쇠 하나가 램프의 빛에 반짝입니다.
 
쇠창살 기둥 사이로 손을 뻗으면 겨우 닿을 거리입니다.
 
연시우:(주변을 살핀 후 손을 뻗어봅니다)
 
정황상 이 열쇠가 여기서 나갈 방법인 게 틀림없습니다.
 
다시 손만 밖으로 빼서 열쇠 구멍에 끼워 돌리면 문은 열릴 테죠.
 
그런데…
 
연시우:
지능
기준치: 65/32/13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아까의 사용인인지 필의 실수인진 모르겠지만 참 허술하기도 하지요
 
덕분에 당신은 탈출 기회를 얻었지만요.
 
당신은 철창 밖으로 나가나요?
 
아니면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할까요?
 
연시우:(열쇠는 챙기고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합니다)
 
당신은 일단 자리를 지키기로 합니다.
 
저렇게 대놓고 열쇠가 떨어져 있는 게 의심스러우니까요.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발소리가 가까워집니다.
 
...
 
이번에도 전강필입니다.
 
아까보다도 훨씬 복잡한 표정이네요.
 
전강필: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
당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가 안 되나요?
열쇠까지 줬잖아요, 그런데 왜?
 
괴로움을 애써 눌러 담은 듯한 목소리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모든 일의 범인 또는 공범으로 당연히 그를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것 치고는 처절함이 잔뜩 묻어나는 어투입니다.
 
연시우:...... 독도 친히 먹여주시고, 이런 곳에 가둬두기까지 하신 분이 (...) 왜 그런 표정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는 가지고 있던 다른 열쇠로 철창의 문을 엽니다.
 
전강필:(...) 이해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이 뭘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여기 있어서는 안 돼요. 당신이 정말 뭔가를 알고 싶다면, 복수든 뭐든 해내고 싶다면 거기서 나와주세요.
 
연시우:... 저는 저한테 이런 짓을 하신 분이 그러시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의향은 없으신 지 묻고 싶네요.
 
전강필:여기서 벗어나면 다 알려줄게요, 네? 일단 밖으로 나와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연시우:... 나가서 당신이 제게 무슨 짓을 할 지 어떻게 알고요?
 
전강필:(뒤로 한 발짝 물러나더니) 맹세코 아무짓도 안 할게요. 이번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될까요?
 
연시우:(잠시 고민하더니 일어나선 철창 밖으로 나가봐요)
 
철문이 바닥에 끌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면 필이 따라오라고 눈짓합니다.
 
저벅, 저벅.
 
촛불을 든 그를 뒤따르면 얼마 안 가 위로 향하는 계단과 마주합니다.
 
그 끝에 다다라 굳게 닫힌 문을 열면 어두운 저택의 홀이 나옵니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치는 이곳은 어딘가 눈에 익습니다.
 
전씨가의 저택.
 
여긴 당신과는 달리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전강필:연시우씨, 이쪽이에요.
 
그가 조심히 당신을 2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이끕니다.
 
그렇게 둘은 고요한 복도를 지나쳐 전강필의 방 앞에 도착합니다.
    ep.3
전강필의 방
 
필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책상 너머 벽에 가족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공작 내외와 열두 살쯤으로 보이는 필이네요.
 
연시우: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단란한 가족 사이에서 필은 묘하게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집니다.
 
홀로 동떨어진 분위기로 어느 누구와도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
 
잠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필이 묻습니다.
 
전강필:내가 준 신문 읽었어요?
 
연시우:... 읽었어요. (뜸) 내용이 전부 사실인가요?
 
전강필:믿고 싶지 않겠지만 전부 사실이 맞아요. 거짓일리 없다는 거...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 누가 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흔들림 없는 저 두 눈.
 
그는 이미 당신의 대답을 확신하고 있네요.
 
연시우:... 모르겠네요. 알고 계시나 봐요?
 
필은 여전히 표정 없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 눈동자에 어째선지 허탈함이 비칩니다.
 
전강필:정말로 모르겠어요?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 건지...
...
내 가문이 벌인 일이에요. 내가 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결백하다고는 안 해요. 나 역시 그런 가족을 막지 못한 죄가 있으니까.
 
연시우:... 확실하지 않아서 물어봤어요. 뭐... 믿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겠죠. (...) 침입 흔적이나 범행 도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던데 공작 가는 가문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닌가 봅니다.
 
필의 말대로라면 당신의 몰락은 그의 뜻이 아닌 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어째서 당신의 집안을 멸했을까요.
 
필은 왜 당신에게 독을 먹였을까요?
 
그 두 가지가 별개의 일이라는 건데,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도 결국은,
 
전강필:(...) 나 또한 당신과 당신 가족의 원수겠죠. 그러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날 죽여도 좋아요. 날붙이로 찌르든 목을 조르든... 기꺼이 죽어드릴게요. 하지만 당장 그렇게 해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가 당신을 도와드릴게요.
복수든 도망이든 뭐든... 당신이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 나한테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연시우:... 기억해두긴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을 죽인다고 해서 제 가문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 이 상황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네요.
... 하루 동안 무얼 하시려고요?
 
전강필:아뇨, 당신 집안과 가족 전부 되돌릴 수 있어요. 나를... 믿어주실 건가요?
 
저 가라앉은 목소리,
 
저 두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장 자세한 설명을 해줄 것 같진 않지만 무척이나 절박한 태도임은 분명합니다.
 
당신도 아닌 전강필이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일까요.
 
연시우:솔직하게 말해서 같은 공작 가인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실 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눈 가만히 응시하다가) ...... 딱 한 번이에요.
 
그때,
 
똑,
 
똑,
 
똑,
 
똑,
 
네 번의 노크가 방문을 두드립니다.
 
한밤중에 사용인이 찾아오는 일은 드문 만큼 급한 용무일 텐데요.
 
필이 조금 당황합니다.
 
전강필:빨리 숨어요! 지금 들키면 정말 끝이에요!
 
...
 
책상 밑이나 침대 옆이 적당해 보입니다.
 
연시우:(주변 둘러보다가 책상 밑으로 숨어요)
 
전강필:...들어와요.
 
필이 대답하자마자 사용인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제법 거리가 있지만 귀를 기울이면 조금은 대화를 들을 수 있을지도요.
 
연시우:(대화를 들으려 귀를 기울여 봅니다)
 
연시우: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혹시나 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둘은 무거운 분위기로 얘기하더니 이내 함께 방을 나섭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마주친 눈이 여기에 있으라고 당부하네요.
 
쾅.
 
이제 다시 혼자 남았습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필의 의중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면 지금이겠죠.
 
연시우:(조심스럽게 일어나봅니다)
 
신경 쓰이는 곳은 책상과 책장,
 
그리고 벽난로 정도입니다.
 
연시우:(책상과 책장 살펴봐요)
(책상 살펴봐요)
 
책상 위에는 문서 더미가 놓여 있고,
 
아래에는 서랍 두 칸이 달려 있습니다.
 
연시우:(문서 더미 살펴봅니다)
 
중요하지 않은 문서들 사이에서 편지 한 장을 발견합니다.
 
짤막한 편지에는 누구의 이름도 없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과 이 방의 주인을 안다면 누가 언제쯤 편지를 쓴 건지 유추 가능합니다.
 
...
 
필을 믿어도 될까요?
 
연시우:(약혼식이면... 최소 2개월 전 부터...)
(... 편지는 제자리에 두고 첫번째칸의 서랍 열어봅니다)
 
첫 번째 칸은 잠겨 있습니다.
 
연시우:(두 번째 칸 열어봅니다)
 
두 번째 칸에는 낡은 일기장이 있습니다.
 
일기장의 연도는 필이 열두 살이었을 때입니다.
 
가정 교사가 글 쓰는 습관을 위해 일기를 권장했다는 글이 맨 앞에 있고,
 
달리 신경 쓰이는 내용은 순서대로 이와 같습니다.
 
일기를 읽는 도중 어느 페이지에 꽂혀 있던 메모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연시우:(주워서 확인해요)
 
연시우:(서랍은 다시 닫고 벽난로 확인합니다)
 
석탄으로 때운 주황빛 불꽃이 넘실거리는 난로가 방을 데웁니다.
 
그 앞에 타다 만 종이 쪼가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연시우:(종이 쪼가리 주워서 확인해요)
 
종이는 지면 대부분이 불에 그을렸으나,
 
내용 일부는 그나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연시우:... 중요한 부분만 그을렸네.
(책장 살펴봅니다)
 
다양한 서적이 가득한 책장에는 수상한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책이나 필이 숨겨둔 무언가라든가...
 
연시우:(책 하나하나까지 자세하게 살펴봐요)
 
연시우:
자료조사
기준치: 20/10/4
굴림: 42
판정결과: 실패
 
온통 평범한 책들뿐입니다.
 
그때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방문이 열립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요.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당신을 응시하던 필은 이내 시선을 거둡니다.
 
서로 간의 불필요한 눈 마주침은 최대한 피하려는 눈치입니다
 
전강필:잠깐 구경이라도 했어요?
 
태연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입니다.
 
연시우:... 네.
(자신도 태연하게 말해요)
 
전강필:별로 상관은 없지만요. (...)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왔어요. 당신 저택에서 방금 돌아오셨거든요.
표면상으로는 그저 결혼 상대 가문을 애도하러 간 것뿐이지만.... 글쎄요...
어쨌든 내일이면 이 집안 모두가 당신이 지하에서 사라진 걸 알게 될 거에요.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주세요.
 
그는 아침 일찍 돌아오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급히 방을 나갑니다.
 
대화가 더 이어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합니다.
 
필은 매정하게 굴려고 애쓰면서도 그러질 못하니까요.
 
독을 먹인 건 그렇다 쳐도,
 
탈출을 도운 것부터 이렇게 숨겨주기까지.
 
매번 손을 내미는 건 분명한 그의 의지였습니다.
 
저 일관되지 않은 언행에도 까닭이 있을까요?
 
손가락의 약혼반지는 어째서 그대로인지,
 
이제 그런 건 아무 소용 없는데도요.
 
여전히 필의 속내는 알 길이 없습니다.
 
...
 
눈을 뜬 지 얼마 안 됐지만 독의 여파로 온몸이 무겁습니다.
 
당장 여기보다 안전한 곳도 없으니 이대로 다시 눈을 감을까요.
 
연시우:(침대 가만히 응시하다가 이내 시선을 돌리곤 다른 곳을 찾아봐요... 주변 둘러보다가 아까 숨었던 책상 밑으로 가서 잠을 청합니다.)
 
...
 
복잡한 밤이 깊어갑니다.
 
HP +1
    ep.4
다음날
 
대낮부터 사람들의 곡성이 터져 나옵니다.
 
여긴 당신의 저택이네요.
 
비탄 섞인 대화는 살짝 열려 있는 부모님의 침실 문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볼까요.
 
연시우:(몸을 숨기고 대화를 들으려 귀를 기울여봅니다.)
 
백작 부인: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머지않아 작위를 박탈당하고 말 거라고요!
그리고 이 저택도,
재산도 전부.
 
...
 
그런 대화가 이어지는 한편 반대쪽에서는 다른 이들이 통곡하고 있습니다.
 
사용인:우리야말로 큰일 아니야?
여기서 나가게 되면, 추천장이라도 제대로 써줄 수 있겠냐고.
써주더라도 없는 것만 못한 종이 쪼가리가 될 거야.
한때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던 곳이었는데,
어쩌다가……
 
...
 
당신은 그런 어지러운 저택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손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내려다보면
 
전강필:연시우씨, 일어날 시간이에요.
 
익숙한 음성이 당신을 깨웁니다.
 
하필 이런 때에 3년 전 일을 꿈으로 꾸다니요.
 
그 당시에도 잃어버린 브로치를 가지고 있었던가요.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필이 커튼을 걷자 이른 새벽빛이 그의 창백한 안색을 비춥니다.
 
밤을 지새우기라도 한 걸까요?
 
당신이 일어난 걸 확인한 그는 무뚝뚝하게 돌아섭니다.
 
연시우:(눈만 느릿하게 깜빡이다가 몸을 일으켜 책상 밑에서 나와요...)
 
전강필:(...) 나한테 계획이 있다고 했죠? 우선 이 집안의 사용인으로 위장하고 이동해요. 사용인들은 셀 수 없이 많으니 당신만 잘해준다면 들킬 위험은 없을 거에요.
 
당신은 탁자에 놓여 있는 하인복을 발견합니다.
 
전강필:이 정도는 혼자 갈아입을 수 있겠죠?
 
필은 준비가 다 되면 나오라고 하고는 밖에서 기다립니다.
 
연시우:(하인복을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갈아입고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봅니다)
 
사용인 차림으로 복도로 나오면 필이 서 있습니다.
 
창밖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지켜보던 그는 당신을 발견하곤 곧장 다가옵니다.
 
전강필:슬슬 1층에서 사용인들이 움직일 시간이에요. 당신이 그들에게서 몰래 가져와야 하는 게 있어요.
 
연시우:...... 뭘 가져와야 하는데요?
 
전강필:서재 열쇠를 찾아 주세요. 오늘 그곳을 청소하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거에요. 난 거기에 함부로 못 들어가거든요.
서재에 이 가문의 몰락과 당신의 복수를 위한 수단이 있어요. 그러니 꼭 당신이 찾아와줘야 해.
... 겸사겸사 아래층이 어떤 상황인지도 봐주면 좋겠네요.
 
연시우:... 정말 사용인 같네요. (...) 아닙니다. 무시하세요. ... 서재 열쇠만 가지고 오면 되는건가요?
 
전강필:(...) 한 번만 부탁할게요. 동행하고는 싶지만... 그러면 더 눈에 띌 거에요. 이 집안 전체가 나를 주시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열쇠만 가져오면 될 거에요.
 
필은 이 저택엔 당신의 얼굴을 아는 하인들도 있다며,
 
위장했더라도 가능하면 다른 이들을 피해 다니길 당부합니다.
 
전강필:때가 되면 내가 당신을 찾으러 갈게요.
 
연시우:... 네. (느릿하게 고개 끄덕이며)
 
필은 당신이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봅니다.
 
아무말
 
넓게 깔린 붉은 융단과 금으로 장식된 새하얀 기둥,
 
그리고 조각상으로 채워진 화려한 홀을 사용인들이 지나다닙니다.
 
보아하니 하인들은 훨씬 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슬슬 일할 시간이라던 필의 말과는 다른데요.
 
어찌 됐든 모두가 평소보다 일찍 움직이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겠죠.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1층을 돌아봅시다.
 
연시우:(사용인과 마주치지 않도록 하며 홀을 살펴봅니다)
 
 
분주해 보이는 사용인들은 당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쑥덕거림이 새어 나옵니다.
 
연시우: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사용인:우리가 못 찾으면 정말 큰일인데.
지금 주인어른의 명령으로 밖으로 나간 사람들도 있으니 괜찮겠지.
어휴, 도련님은 안 그래도 3년 전부터 주인님의 눈 밖에 나신 분이 어쩌자는 건지.
이제 필수적인 것 외에는 도련님께 관여하지 말라 하시더군.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말소리는 그대로 멀어집니다.
 
당신의 탈출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연시우:(...... 복잡하게 됐네.)
(더 살펴볼 것이 있는 지 확인하려 주변을 둘러봅니다)
 
홀에는 더 볼 만한 게 없어 보이네요.
 
연시우:(조심스럽게 식당으로 향합니다)
 
식당
 
당신이 쓰러진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불쾌하게도 모든 것이 인위적일 만큼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눈길이 닿은 창가에 누군가가 흘려 쓴 문장이 있습니다.
 
연시우:(불편한 마음은 애써 무시한 채 적힌 문장을 읽어봅니다)
 
이를 제외하고 식당에서 볼 만한 건 없어 보입니다.
 
연시우:(... 3년 전 그애에게 속죄의 선물...)
(식당을 나와 옆쪽에 위치한 응접실로 들어갑니다)
 
사람이 없는 응접실은 유독 어둡고 냉한 기운이 감돕니다.
 
둥근 탁자 위에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듯합니다.
 
연시우:(편지를 보곤 잠시 고민하다가 이쪽으로 오는 사람이 없는 지 확인 해봅니다)
 
당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습니다.
 
연시우:(조심스럽게 편지 들어서 읽어봅니다)
 
연시우:(... 3년 전?)
(지워진 저건 또 뭐고...)
 
내용을 다 읽자마자 편지는 허공의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방금 뭐였죠?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62
판정결과: 실패
(?)
 
만약 공작에게 보내온 편지라면,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누굴까요?
 
연시우:(......)
(응접실에서 나와 창고로 향합니다)
 
창고
 
각종 자재를 분류해둔 대형 창고입니다.
 
입구를 기웃거리면 지나가던 하인과 부딪힙니다.
 
사용인:미안, 바빠서.
 
그는 급히 어두운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빈 선반에 열쇠 하나를 탁 소리 나게 올려두고 뭔가를 찾습니다.
 
열쇠에 입구 쪽 빛이 닿아 '서재'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몰래 가져갈까요?
 
연시우:(몰래 가져가려 시도해 봅니다)
 
연시우:
은밀행동
기준치: 60/30/12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사용인은 당신의 행동을 보지 못합니다.
 
덕분에 쉽게 열쇠를 얻었으니 어서 자리를 뜨는 게 좋겠습니다.
 
연시우:(창고에서 나와 지하실로 향합니다)
 
지하실로 통하는 문 주변을 하인들이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어떤 흔적,
 
예를 들면 탈출한 이의 종적이라도 찾는 모양입니다.
 
눈에 띄어서 좋은 일은 없으니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말 한마디가 귀에 박힙니다.
 
사용인:혹시 도련님이 일부러 도와주신 건 아닐까? 3년 전에도 이상하게 그쪽 집안을 감쌌잖아.
그때 처음으로 그분이 가문의 뜻에 반기를 들었으니… 이후로 계속 주인어른께 밉보이셨지.
그것보다 난 공작가가 왜 백작가를 가만히 못 두는지 모르겠어. 그 땅 밑에 꿀이라도 흐르나?
에이, 아무튼 이런 얘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우린 말 그대로 죽음이라고.
 
둘은 대화를 멈추고 다른 하인들 틈으로 사라집니다.
 
사용인들은 전부 이 집안을 두려워하고 충성하는 듯해서,
 
그들에게 들킨다면 큰일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시우:(... 반기를 들어?)
(의문을 품은 채 지하실에서 멀어집니다)
 
이제 서재 열쇠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알아낸 것들에 의하면 필은 확실히 당신을 도울 모양입니다.
 
게다가 3년 전에도 그가 연씨가를 감쌌다던데,
 
하필 그때 있었던 집안의 일도 이 가문과 엮여 있었나 하는 생각은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강필:필요한 건 찾았어요?
 
문득 필이 뒤에서 나타나 속삭입니다.
 
연시우:(깜짝...)
(열쇠를 들어 당신에게 보여줍니다)
 
보는 눈이 없는 걸 확인한 그는 재빨리 당신을 2층으로 이끕니다.
 
아직 오전이지만 갑작스레 몰려든 먹구름 탓에 하늘이 흐리네요.
 
하인들은 다른 일로 바빠서인지 이 층엔 둘뿐입니다.
 
잠시 뒤 필의 침실 반대편 서재 앞에 도착하자 그가 멈춥니다.
 
전강필:여기에요.
 
연시우:... 들어가면 되나요?
 
전강필:(고개 살짝 까딱이고)
 
연시우:(열쇠를 이용하여 문을 열고는 당신을 한 번 바라봤다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갑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 빽빽하게 들어선 책들 특유의 향이 풍겨옵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잉크와 펜이 놓인 책상이 있습니다.
 
필이 서재의 문을 닫으며 뒤따라 들어옵니다.
 
전강필:여긴 항상 잠겨 있어요. 하인들도 청소할 때만 드나들고, 나도 명분이 없으면 올 수 없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이곳에 중요한 비밀이 있다는 거죠.
 
그런 말을 하며 그가 책장을 빙 둘러보는데,
 
연시우: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돌연 얼굴을 굳힌 필이 다급히 당신을 돌아봅니다.
 
전강필:이제 곧 들어올 사람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얼굴도 절대 보이지 마.
지금부터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반응을 보여선 안 돼요.
명심해요. 당신은 날 감시하기 위해 서재에 함께 온 사용인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쾅 열리고,
 
동시에 필이 당신을 밀쳐내어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서재 안으로 들어온 저택의 주인은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책상 의자에 앉습니다.
 
공작:...
스스로 감시를 붙인 듯하니 여기에 들어온 이유는 굳이 묻지 않겠다.
네가 허튼짓을 하면 하인들이 알려주겠지. 네 편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서 하루 일찍 와봤다만. 네 약혼자가 탈출했다지.
어젯밤부터 넌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착각인가?
 
공작:네 부탁대로 약혼까지 시켜줬으나 결과가 말이 아니구나.
역시 전부 한 번에 죽였어야 했나.
 
공작은 개미 몇 마리쯤의 죽음을 얘기하듯이 백작가의 절멸을 읊습니다.
 
당신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는 필이 원수의 일원임을 새삼 직시합니다.
 
필이 끝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자,
 
그의 양부는 억누르던 분노를 터뜨립니다.
 
공작:어떻게, 어떻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3년 전에도 네 녀석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다.
네가 그 빌어먹을 집안을 막아주지만 않았어도!
대답해라.
왜 나를 배신하고 그들을 돕는 건지!
 
책상 위 잉크병이 바닥으로 내쳐지며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깨진 파편이 검푸른 잉크와 함께 바닥으로 튀는 한편,
 
당신은 분노와 어둠으로 점철된 형상을 목격합니다.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요?
 
방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칠흑이 공작을 삼켜버리더니 전강필에게 달려듭니다.
 
동시에 솟아오른 검은 파도가 필의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어두운 연기가 사방에 피어오릅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이 쉽사리 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악마가 존재한다면 분명히 저런 모습일 테죠.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도한 연시우.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연시우:1
 
현실 같지 않은 상황은 한순간에 제자리를 찾습니다.
 
악마는 다시 이 나라의 명망 있는 공작으로 돌아와,
 
기품과 오만이 어린 얼굴로 죽어가는 자신의 양자를 내려다봅니다.
 
공작:…나는 너를 우리 집안의 훌륭한 방패막이로 길렀다.
비밀스럽고 부패한 일들을 맡기고,
가문의 지위와 명예,
그리고 모자랄 것 없는 삶을 주었지.
원래 하던 대로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면 될 것을.
이제라도 그러면 깨끗한 사람이 될 것 같으냐.
 
공작은 서재의 문을 열어 그대로 천천히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말 몇 마디를 남기고서요.
 
공작:…아직 너는 쓸모가 많으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어떻게든 연시우를 찾아내고, 백작 저로 가서 찾아야 할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
마차는 바로 준비해주마.
그러나 다른 도움은 기대 마라. 알아서 해결해.
이번에도 잘못을 수습하지 못하면 더는 널 이용할 가치도, 이 집안에 둘 이유도 없어지겠지.
 
쾅.
 
다시 고요해진 서재엔 쓰러진 필의 옅은 숨소리만이 떠돕니다.
 
연시우:(다급히 쓰러진 필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합니다...)
 
다가가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면 온몸이 상처로 가득합니다.
 
마치 칼날에 베인 것만 같습니다.
 
기이하게도 모두 동일한 깊이,
 
동일한 길이로요.
 
다행히 피는 흐르지 않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의 양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어쩌다 이런 깊은 세상의 비밀을 보게 된 걸까요.
 
전강필:... ...아,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요.
아니, 당신한텐 딱히 상관없으려나...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필은 떨리는 손으로 구석의 책장을 가리킵니다.
 
전강필: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와 같다면... 저기에 우리가 찾는 책이 있을 거에요. 부탁할게.
 
연시우:... 당신이 사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을 잠시 지켜보다가 가르킨 구석의 책장으로 향합니다.)
 
연시우:
자료조사
기준치: 20/10/4
굴림: 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몇 열의 책들 사이에서 시선을 끄는 서적을 발견합니다.
 
낡은 장서는 전체가 라틴어로 필사되어 있는 듯한데,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표지 제목인
 
뿐입니다.
 
발견한 것을 보이자 필이 천천히 일어나 다가옵니다.
 
필이 힘없이 서적을 넘기다 보면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전강필:... 당신이 읽어 봐요. 알아둬서 나쁠건 없으니까.
 
연시우:(떨어진 종이를 줍고는 당신을 빤히 응시하다가) ... 일어나도 괜찮은 건가요.
 
전강필:(손 살짝 들어올리고) 나는 괜찮아요.
 
연시우:(... 종이로 시선을 옮기고는 읽어봅니다)
 
당신이 살펴보면 조잡한 삽화와 모국어로 적혀 있는 내용을 발견합니다.
 
아무말
 
연시우:(일기에 나온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건가...)
... 뭐 좀 물어봐도 되나요.
 
전강필:... 답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세요.
 
연시우:... 술자가 지정한 대상에 당신이 속해있나요?
 
전강필:(...) 나중에 다 알려드릴게요. 우선 방으로 돌아갈까요?
 
필은 서적을 챙기곤 위태로운 걸음을 옮깁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 유쾌하진 않네요.
 
연시우:(작게 한숨 한 번 내뱉고) ... 부축해드릴게요.
 
전강필:(싱긋 웃더니) 고마워요.
 
연시우:(당신을 부축하며 방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
 
방문을 열자마자 창밖의 회색 구름 가득 낀 하늘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필은 문빗장을 걸고 어두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집니다.
 
품에 아까 찾은 책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고서요.
 
전강필:... 이것만 사라진다면 공작가는 한순간에 무너질 거에요. 고작 책 한 권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아할 지는 몰라도, 그만큼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될 것들을 전부 담은 책이거든요.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 보니 뺨이 붉고 호흡은 아까보다 훨씬 불안정합니다.
 
연시우:... 괜찮기는 무슨. (중얼거리고는 가까이 다가가며) 책을 없애야 한다는 건 알겠으니까... 이건 어떻게 치료할 방법이 없나요?
 
중간중간 새어 나오는 신음성과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위독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전강필:괜찮아요. 진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내 집안은, 아니 공작가는... 타락한 마법사들과 내통하고 있어요. 그런 게 실재할 거라고 생각한 적 있어요? (...) 나는 그런 집안의 도구로 살아왔어요.
하지만 나는 결국 현실에 순응했고, 이 가문에 기대어 살아왔으니 결코 무고하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은...
적어도 당신만은 이런 일에 엮이지 않길 바랐어요.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아서...
...
 
전강필:독을 먹인 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당신마저...
내가 당신에게 용사받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걸 원해서 당신을 돕겠다는 것도 아니야.
나는 그저...
왜일까... ...
 
필의 온전치 못한 정신 때문에 뒤죽박죽이었던 이야기가 끊겼다가,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이어집니다.
 
전강필:... ... 미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옆에 있어 줄 수 있어?
계획에 차질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요.
 
연시우: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그런 말 해봤자...
...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요. 제가 그 날 멀쩡하게 돌아갔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겠죠.
...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왜 제가 이런 일에 엮이지 않길 바랐나요?
계획에 차질... 지금 그거보다 신경 써야 할 게 여기 있는데. (당신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 제대로 누워요. (...) 어디 안 갈 테니까. (침대에 걸터 앉으며 말해요)
 
당신이 승낙하면 필은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습니다.
 
전강필:... 미안해요. 나, 지금 너무 피곤한가 봐요. 대답은 나중에... 나중에 꼭 해드릴게요. (...) 이런 지긋지긋한 곳에서 보고 있기 힘들 사람과 꼬박 하루를 견뎠네요.
...
있잖아요.
그간 차갑게 대해서 미안했어요.
 
당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정신을 잃은 듯이 잠드는 필입니다.
 
공허한 가을바람이 이따금 유리창을 두드립니다.
 
..
 
툭.
 
나뭇잎 끝에서 떨어진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소리 없는 부슬비를 피해 잠깐 들어온 나무 아래입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 숲에는 혼자만이 남은 것 같습니다.
 
아니, 혼자는 아닌가요.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보면 바로 곁에 있던 이가 속삭입니다.
 
얼굴이 뿌옇게 보여서 누구인지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
 
걱정……
 
저택으로 돌아가면 전부……
 
평생 오늘을……
 
대신 이 숲과 내가……
 
그리고 하나는 알아줘.
 
"
 
말 몇 마디가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집니다.
 
하나 같이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 얼굴도,
 
목소리도.
 
꿈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래요, 이건 꿈이었죠.
 
그러니까 이런 본 적도 없는 상황을 겪는 거예요.
 
딱 하나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어느새 손에 쥐어진 브로치......
 
아,
 
저도 모르게 따라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고개를 들면 필이 상체만 일으킨 채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후 한 시쯤 되었는데,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아요.
 
이윽고 필이 잔잔한 시선으로 당신을 봅니다.
 
전강필:일어났어요? 슬슬 당신 저택으로 떠날까 해서요. (...) 어차피 가야만 하는 곳이었는데, 명분이 생겼으니 차라리 잘된건지도 몰라요. 우리가 찾은 책은 쉽게 없앨 수 없거든요. 유일한 해답은 그곳에 있을 거에요.
 
연시우:... 제 저택이요... (...) 왜 그 해답이 그곳에 있는 진 잘 모르겠지만... 네. 가요. (고개 끄덕여요)
 
필은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합니다.
 
미리 준비해둔 가방에 서재에서 가져온 책과 빈 자루를 집어넣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 잠겨 있던 책상 서랍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살짝 내민 손에 당신의 브로치가 놓여 있네요.
 
전강필:이만 당신한테 돌려드릴게요. 내 눈에 보이면 계속 망설여질 것 같았거든.
... ...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요.
 
역시 단순히 잃어버린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마냥 평범한 브로치 같진 않은데요.
 
여기에 무슨 가치가 있어서 저리 말하는 걸까요?
 
연시우:(브로치 건네 받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가슴 부근에 달아요)
 
필은 천천히 방문을 엽니다.
 
전강필:그럼 갈까요? 이미 밖에서 마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연시우:... 네. (고개 끄덕입니다)
    ep.5
백작 저와 숲
 
저택 밖으로 나오기까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 집안의 자제가 외출할 예정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아무도 필을 도울 상황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러나 덕분에 둘은 쉽게 저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필이 마부에게 목적지를 알리는 사이 당신은 마차에 오르고,
 
뒤이어 그가 탑승하자 마차는 아무 의심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마차는 다시 숲을 지나고 있습니다.
 
가끔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창밖으로 나무들이 스쳐 갑니다.
 
채도가 낮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숲은 여전히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런 기분을 느낀 건 당신만이 아닌 듯, 필도 고요하게 숲을 응시하고 있네요.
 
전강필:다른 사람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본 적이 있나요?
... 난 해본 것 같아요. 어쩌면 한 번 더 할지도 모르고.
 
연시우:... 해본 적이 있었는 진 잘 모르겠는데... (뜸) 곧 할 것 같기도 하네요.
 
전강필:(하하) 누군가를 위해... 라는 건 꽤 낭만적이지 않나요? 그래도 당신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연시우:네... 낭만적이네요. (...) 그랬으면 좋겠지만 누군가를 위해선 그래야 할 일이 곧 생길 것 같아서요.
 
전강필:(싱긋 웃고는 들릴까 말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려) ...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부럽네요.
 
잠깐 대화하다 보면 멀리서 백작가의 저택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차는 곧이어 저택 뒤로 돌아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멈춰 섭니다.
 
필이 먼저 내려 한 손을 잡으라는 듯 뻗어줍니다.
 
연시우:(뻗은 손을 맞잡고 마차에서 내립니다)
 
당신도 마차에서 내리면 둘은 저택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마침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필이 어쩐지 걱정하는 눈으로 당신을 흘긋거립니다.
 
전강필:준비됐다면 안으로 들어갈까요?
 
연시우:(멍하니 저택만을 바라보다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 사람은 빛이 들지 않는 저택의 홀에 들어섭니다.
 
먹구름 탓에 흐리지만 아직 낮이라 촛불이 필요할 정도는 아닙니다.
 
연씨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가구와 장식들은 그대로 남아 있네요.
 
사람의 온기가 없는 것만 빼면 살해 현장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걸요.
 
제 가문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연시우.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49
판정결과: 실패
 
연시우:2
 
전강필:...이런 식으로 오랜만에 방문하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죠...
 
필은 머뭇거리더니 필요한 건 백작 내외의 침실에 있을 것 같다며 먼저 2층 계단을 오릅니다.
 
연시우:...... 이렇게 차갑고 조용하던 곳은 아니었는데. (중얼거리며 당신의 뒤를 따릅니다...)
 
그를 뒤따르면서,
 
연시우: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바닥에서 작게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를 발견합니다.
 
공작 저에서 마주한 악마 주변에 이런 것들이 일렁거렸지요.
 
존재를 알아채자 집안 곳곳에 검은 연기가 독처럼 퍼져 있는 게 보입니다.
 
벌써 거세진 비바람이 창문을 치고 갑니다.
 
언뜻 내려다본 정원의 나무들이 가차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앞장서서 복도를 걷던 필이 조용히 묻습니다.
 
전강필:이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연시우:... 없을 것 같네요.
 
필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어집니다.
 
대화가 멎자,
 
유령 저택이 되어버린 곳이어서일까요.
 
스산한 바람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연시우: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하지만 기분 탓일 뿐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강필:......!
 
그런데 문득 필이 당신을 보곤 놀라더니,
 
손을 잡고 도망치듯 복도를 달립니다.
 
무엇으로부터요?
 
연시우:(...?)
 
두 사람이 정신없이 내달려 다다른 곳은 애초에 목적지였던 방입니다.
 
연시우:(엉겁결에 같이 달립니다)
 
필이 재빨리 문을 닫고 그대로 주저앉아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전강필:괜찮아요? 뭔가를 보거나 듣지는 않았어?
 
연시우:...네?
(...) 왜 그러세요?
 
전강필:(...하아)
 
그는 어두운 얼굴로 침실을 뒤적거리기 시작합니다.
 
전강필:아니에요, 시간이 없어요. 내 반대편을 살펴봐 줄래요? 눈에 띄는 거라면 뭐든 봐주세요.
 
연시우:(의아했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침대를 살펴봅니다)
 
침대 구석구석에 혈흔이 묻어 있습니다.
 
아직 피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역한 기분이 듭니다.
 
잔뜩 어지럽혀져 있는 침대 아래에 확대경이 떨어져 있습니다.
 
이 방에 확대경으로 살펴볼 만한 게 있었을까요?
 
연시우:(... 부모님...)
(확대경 주워들곤 당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 이런 걸 주웠는데 필요한가요?
 
전강필:(힐끔 보더니 고개 기울이고) 일단 가지고 있어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어느곳에 쓰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요.
 
연시우:(확대경은 잠시 두고... 책상 살펴봅니다)
 
책상 위에 있던 잡다한 것들은 누가 가져갔는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책상 서랍도 텅 비어 있습니다.
 
단지 필이 방에서 발견하고 올려둔 촛불만이 주위를 밝힐 뿐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눈에 띄는 게 없는데요…
 
연시우:(확대경 들곤 책상 살펴봐요)
 
나무 무늬뿐인 줄만 알았던 책상 위에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확대경이 없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겠습니다.
 
연시우:(잠시 두고 서랍장 살펴봅니다)
 
서랍장 안에는 가벼운 의복들이 곱게 접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그대로 남겨둔 모양입니다.
 
연시우:(더 자세히 살필 것이 있나 확인 해봅니다)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 안쪽에 뭔가 숨겨두기도 좋겠죠.
 
가지런히 접어 둔 옷 틈에서 메모 하나를 찾습니다.
 
연시우:(70 50 20...?)
(메모 챙기고 책상 서랍 다시 확인 해봅니다)
 
책상 어디를 살피나요?
 
연시우:(책상 밑 살펴봅니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정사각형의 여닫이문이 있습니다.
 
바닥재와 완벽히 똑같은 무늬에,
 
틈도 없이 딱 들어맞아서 모르는 사람은 지나칠 만합니다.
 
...
 
방을 다 둘러보았다고 생각할 때쯤에 필이 다가옵니다.
 
전강필:뭔가 찾았나요?
 
연시우:세 가지를 찾았는데요... (메모 건네주며) 이거랑.
책상 위에 이 아래에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고 적혀 있었고...
여기에 여닫이문이 있네요. (바닥 가리켜요)
 
전강필:(하나씩 듣더니 마지막에 당신이 가리키는 바닥 보고 고개 살짝 끄덕여) 들어가면 될 것 같네요.
 
연시우:(여닫이문 손잡이 잡고 열어봅니다)
 
바닥과 꼭 맞는 비밀의 문을 열면,
 
한 번에 한 명만 들어갈 만큼 좁고 어두운 계단 통로가 나옵니다.
 
책상에 올려둔 촛불을 다시 챙긴 필이 그 안으로 먼저 발을 들이며 뒤돌아봅니다.
 
전강필:어서 들어와요. 이 앞에 당신에게 해가 되는 건 없을 거에요.
 
연시우:(고개 끄덕이곤 따라 들어갑니다)
 
그를 뒤따라 깊은 통로를 한참 내려가면 철문 하나가 나옵니다.
 
달려 있는 다이얼 자물쇠의 숫자를 알맞게 세 번 맞추면 열리는 형식입니다.
 
연시우:... 아까 그 메모에 적힌 숫자가 비밀번호 일까요?
 
전강필:(자물쇠 빤히 보더니) ...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연시우:(숫자 맞추려 시도 해봅니다)
(메모에 적힌대로 70 50 20 차례차례 맞춰봅니다...)
 
다이얼을 돌리자 자물쇠가 덜컥거리며 문이 열립니다.
 
먼저 열린 문틈으로 들어간 필이 묘하게 당신을 신경 쓰는 눈치입니다.
 
당신도 방에 들어가면 곧바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마주합니다.
 
벽과 바닥에는 온통 별을 닮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꼭 깨진 마름모 같은 눈 그림도 함께입니다.
 
또한 방구석에는 벽과 바닥의 문양과 흡사한 그림이 새겨진 녹색 원형 돌들이 일정한 배열로 늘어져 있습니다.
 
돌에 박힌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하는 것만 같은 게,
 
당신은 능적으로 저 돌들이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님을 알아차립니다.
 
전강필:위험하니까 너무 가까이 가진 마요. 그것보다 ... 저기에 뭐가 있어요.
 
필이 반대쪽에 놓여 있는 참나무 선반을 가리킵니다.
 
그 위에는 오래된 노트 한 권
 
펼쳐둔 편지 두 장이 있습니다.
 
연시우:... 저택에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
(편지 들어서 읽어봅니다)
 
연시우:... 비슷한 고통? (중얼거리곤 편지를 반복해서 읽습니다...)
... 전 공작한테 온 편지네요.
 
전강필:(...) 그렇네요.
 
연시우:친애하는... (멍하니 바라보던 편지는 내려두고 노트 들어서 확인해 봅니다)
 
노트에 글이 적힌 페이지는 단 한 장뿐인데, 잉크가 군데군데 번져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우리와 비슷한 비밀을 안고 있는 가문을 찾아냈다. 아주 지극한 우연이었다. 행운이 이렇게 쉽게 찾아올 수 있던가? 우리보다 막강한 권세가 있는 가문으로 지금껏 남다른 친분은 없었던 사람이다. 아직 그 집안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는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를 당장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으나 예감이 좋다.
 
명백히 당신의 아버지인 백작의 필체입니다.
 
이 집안에도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요.
 
결국 지금까지 당신만 아무것도 몰랐던 겁니다.
 
전강필:... 가족이라고 모든 걸 알지는 못하니까요.
 
필이 위로하려는 듯 중얼거립니다.
 
연시우:...... 아버지...
(공허한 눈으로 노트만 바라보며 고개 끄덕입니다...)
 
선반을 살핀 직후에 당신은 방안에서 부정적인 기운을 느낍니다.
 
연시우: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근방을 살피면 구석에서 꿈틀거리던 검은 덩어리를 발견합니다.
 
물컹거리는 질감의 그것은 까만 액체를 흘리며 징그럽게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24
판정결과: 보통 성공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그때, 필이 가방에서 빈 자루를 꺼내더니 괴상한 생명체를 집어 담습니다.
 
볼록해진 자루가 그의 손아귀에서 꿈틀거립니다.
 
전강필:이건 제 양부나 타락한 마법사들이 추적할 때 사용하는 건데... 혹시나 했지만 정말 여기서 찾게 될 줄은 몰랐네요.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어요. 이 방에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서 다행이네요. 하마터면 이곳의 존재가 그대로 들통날 뻔했어요.
 
움직이는 자루를 도로 가방에 집어넣은 필은 이만 침실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연시우:(미간 살짝 찌푸린 채로 자루 바라보다가 고개 끄덕입니다)
 
둘은 방을 벗어나 다시 계단을 오릅니다.
 
...
 
되돌아온 부모님의 침실에서는 아까보다도 짙은 음산함이 묻어납니다.
 
당신이 살던 곳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영혼이 떠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가 되어서일까요.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열망을 느낍니다.
 
복도로 나가기 전에 필이 문손잡이를 쥐고서 당신을 봅니다.
 
전강필:만약,
정말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날 두고 먼저 저택을 떠나요.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보고 익혀왔으니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알았죠?
 
연시우:... 그런 만약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지만 (...)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다는 거...
... 정말이죠?
 
전강필:어디까지나 만일이니까요.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돼요. 혹시나 그렇게 되면 아까 지나온 숲에서 다시 만나요. 벗어날 수 있는 거 맞아요.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이 저택의 일원인 당신이니까.
 
...
 
복도로 나오자마자 폭우로 인해 흐릿해진 바깥 풍경이 보입니다.
 
세찬 비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창문을 때려서 둘의 발걸음 소리는 묻히고 맙니다.
 
초가을치고는 지독히도 나쁜 날씨입니다.
 
얼핏 본 복도의 괘종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전강필:돌아가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네요. 그래도 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요.
 
연시우:... 네. (고개 끄덕여요)
 
함께 얼마 걷지도 않았을 즈음에 바깥에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옵니다.
 
당신이 듣기로는 분명히 누군가의 음성이었습니다.
 
전강필:.......
 
잠시 주춤하던 필이 다시 당신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전강필:조심해... 조심하세요, 시우씨.
 
마치 누군가를 잃을까 봐 겁을 내는 것 같았습니다.
 
불현듯 유리창 몇 개가 깨지며 그 틈으로 거센 비바람이 들어옵니다.
 
그러자 그는 멈추지 않고 더욱 조급하게 계단을 내달립니다.
 
네, 전강필은 명백히 무언가로부터 당신을 데리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유달리 멀게 느껴지던 1층에 발을 디뎠을 때입니다.
 
연시우:
기준치: 75/37/15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어디선가 불규칙한 형태의 그림자가 나타나 당신을 덮칩니다.
 
사실은 당신이 노려졌던 것 같은데,
 
직전에 필이 당신을 힘껏 밀쳐 피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그림자는 쓰러진 필에게 달라붙어 조금씩 그를 좀먹어 갑니다.
 
그 광경은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연시우: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99
판정결과: 대실패
 
필은 공작 저에서의 일로 아직 몸도 성치 않으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전강필:어서 밖으로 나가! 그대로 숲으로 난 길로 쭉 달려요!
거기서 기다려 줘. 곧 만나러 갈 테니까!
 
연시우:(잠시 망설이다가 달려나갑니다. 가는 길에 고개 뒤로 돌려 당신 바라보고는) ... 약속 지켜야 해요!
 
당신은 혼자 저택을 나와 이어진 길을 따라 달립니다.
 
차가운 바람과 무거운 빗방울 속에서,
 
두 발로 힘껏 뛰어도 숲은 가까워질 듯하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끝이 있다고 믿고 숲으로 향할 수밖에 없겠죠.
 
숨이 끝까지 차올랐으나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요.
 
시야에 나무가 하나하나 명확하게 들어올 즈음엔 하늘이 눈에 띄게 잠잠해져 있습니다.
 
여전히 부슬비는 내리지만 바람은 멎었네요.
 
자신의 의지로 찾은 숲은 유난히 그리움에 사무쳤습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은 뭘까요.
 
아득히 멀어진 저택 쪽에서 필은 아직 올 기미가 없습니다.
 
그를 믿고 이곳에 먼저 도착한 만큼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릴까요.
 
연시우:(나무 쪽을 둘러봅니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싱그러운 빛이 없는 나무들입니다.
 
그런 관목들 사이에서 당신은 땅에 박힌 바위를 발견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면을 긁어 글을 새겨두었습니다.
 
이어서 내려다본 바위 밑동의 흙은 주변과는 달리 유독 평평합니다.
 
누가 인위적으로 덮어둔 모양새입니다.
 
연시우:(흙 파헤쳐 봅니다)
 
흙을 파내면 그 아래에 묻혀 있던 작은 상자를 발견합니다.
 
연시우:(상자 꺼내서 열어봅니다)
 
상자를 열면 안에 녹슨 열쇠
 
쪽지가 들어 있습니다.
 
연시우:(쪽지 읽어봅니다)
 
꼬깃꼬깃 접어둔 쪽지에는 한 문장만이 적혀 있습니다.
 
연시우:(...?)
(녹슨 열쇠 집어 들어요)
 
열쇠라... 어디에 쓰는 걸까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연시우:(챙기고 잔디 둘러봅니다)
 
비를 머금은 잔디 바닥에 작은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습니다.
 
숲을 지날 때마다 누가 당신을 부르는 것만 같다고 했었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주위의 나뭇잎과 풀줄기 틈새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요?
 
연시우:(...?)
(귀 기울여봅니다)
 
매번 지나칠 뿐이었던 숲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면 음성은 좀 더 분명해지지만 여전히 희미합니다.
 
"
 
걱정하지 마. 저택으로 돌아가면…
 
… 버릴 테니까요.
 
평생 오늘을……
 
대신 이 숲과 내가 기억하고 있을게.
 
그리고 하나는 알아줘요.
 
나는 단 한 번도……
 
"
 
...
 
숲을 돌아보자 기억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부슬비가 내리던 숲,
 
나무 아래의 두 사람,
 
브로치를 건네던 손.
 
여전히 단편적인 기억뿐이지만 분명합니다.
 
3년 전 당신은 어떤 이와 함께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요.
 
"
 
걱정하지 마.
 
저택으로 돌아가면 전부 없던 일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평생 오늘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해요.
 
대신 이 숲과 내가 기억하고 있을게.
 
그리고 하나는 알아줘요.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을 놓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
 
그런 몇 마디 말과 함께 그가 준 것이 브로치였습니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낯설지 않았고,
 
그리웠으며,
 
몇 번이나 꿈에 나왔던 것.
 
집안이 기울어 답답한 속내를 어찌할 줄 몰랐을 때,
 
필은 당신을 이곳에 데려왔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은 곁에 있을 거라며,
 
이 브로치를.......
 
...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는 비가 완전히 그칩니다.
 
흐렸던 하늘도 아까보다는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축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전강필:... 많이 기다렸어요? 곧 만나러 온다고 했었잖아...
 
눈이 마주친 필은 웃어 주지만,
 
온몸을 미세하게 떨고 얼굴에 핏기가 없습니다.
 
겨우 한 발자국씩 내딛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습니다.
 
그가 가까운 나무에 천천히 기대어 앉습니다.
 
전강필:... ...당신이 영원히 이 숲을 찾을 일이 없길 바랐어. 그렇다는 건 당신에게 다시 그때만큼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그냥 다 잊고, 당신이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어.
그런데...
결국은 이렇게 됐다는 거죠.
 
필이 당신의 브로치에 손을 가져다 댑니다.
 
전강필:난 분명 결심했었거든요. 3년 전 그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만은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그런데 당신이 여전히 이 브로치를 가지고 있던 거에요. 그래서 순간 망설여졌어. 좀 더 당신 주위를 맴돌고 싶어서, 이대로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서. 더는 그런 생각이 안 들게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기로 했었는데...
 
전강필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어느 나무에 다가갑니다.
 
전강필:이제 확실히 알아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그가 나무 구멍 안에서 녹슨 상자를 꺼내 당신에게 내밉니다.
 
아까 찾은 녹슨 열쇠로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시우:(... 녹슨 열쇠로 열어봅니다)
 
열쇠로 상자를 열면, 내부에는 돌돌 말아 각각 끈으로 묶어 놓은 양피지 두 장이 있습니다.
 
전강필:아무거나 먼저 읽어 봐요.
 
연시우:(양피지 한 장 꺼내어 끈을 풀곤 읽어봅니다)
 
양피지를 펼치면 이해하기 힘든 글이 세로로 길게 적혀 있습니다.
 
당신이 끝까지 읽기를 기다리던 강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전강필:3년 전 제 양부는 줄곧 찾고 있던 게 당신 가문에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건 공작가가 섬기는 신을 이 세상으로 부를 수 있는 통로예요. 백작가는 그 통로에 어떤 존재도 드나들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 공작가와 타락한 마법사들에게는 당신 집안이 방해였나 봐요. 그래서 그들은 백작가를 서서히 몰락시키려 했던 거에요. (...) 최대한 자신들이 세상에 들어나지 않는 방식으로.
 
연시우:...... 우리의 혼담이 오간 것도 단순히 그 일 때문인가요?
 
전강필:맞아요. 우리 가문... 그러니까 공작가가 당신 가문을 노리고 그랬던 거에요. 그런데 나는,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그런 일에 엮어서 희생되는 게 싫었어요.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 그래서 이 양피지에 적힌 주문을 사용했어요. 우선 당신 집안의 누명과 실패를 없던 일로 돌리고, 점차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연시우:... 이 주문을 사용하셨다고요? ... 그래서 그랬구나.(중얼) 3년 전에 몰락하던 우리 가문이 재흥하게 된 게... 당신이 이 주문을 써서 그랬던 거네요. 숲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도... (...) 주문의 대가로 술자는 가장 원치 않는 이별을 반드시 겪게 된다고 하는데, 이건 두렵지 않았나요? 당신과 나는... (뜸) 그냥 소꿉친구였고,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잖아요. 그런 상대가 희생당하는 게 싫어서 그런 이별을 감수하고도 이 주문을 사용했다는 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전강필:(고개 살짝 끄덕여) ... 그래요, 아직 주문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서 늘 불안했어요.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우리 둘 중 하나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되면 끝까지 당신을 돕겠다는 약속도 못 지키잖아. 그런데 이제 마음이 놓이네요. 드디어 대가를 치르고,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피식 웃고)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당신도 언제가는 ... 언젠가는 이런 날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뒤이어 필이 다른 양피지도 펼쳐 보여줍니다.
 
이번 것도 다 읽으면 그가 가방을 당신에게 떠넘깁니다.
 
안에는 공작가의 책과 백작 저에서 발견한 괴이한 생명체를 담은 자루가 들어 있습니다.
 
전강필:시우, 내가 반드시 가장 원치 않는 이별을 겪게 될 거라 했었죠? 난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나는 이대로 오래 살 수 없어요. 아까 본 그림자들의 저주가 정신과 생명을 갉아먹고 있거든요. (약간 씁쓸한 표정 하더니) 천천히 고통받으며 죽어갈 바에는 차라리 당신을 위해, 연시우라는 사람을 위해 지금 죽고 싶어요.
 
연시우:... 아까 나중에 대답해 준다고 하셨죠. ... 술자가 지정한 대상에 당신이 속해있나요? (...) '이들은 소환된 일정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는 것이 좋다'라고 적혀있었잖아요. 만약 멀리 도망을 쳐도... 당신은 오래 살 수 없나요? ...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건 정말 낭만적이라고 하셨죠. 그럼에도 저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요.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다가) ... 타인이 저를 위해 희생을 하는 건 바라지 않아요. 그렇지만 당신이 천천히 고통받으며 죽어가길 바라지도 않아요. (뜸) ... 우리가 이런 가문의 자제들이 아니라 평범하게 태어났다면 지금쯤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건...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네요. (손으로 약혼반지 쓸어내리며) 우리 운명도 참 기구한 것 같지 않나요
... 당신도 함께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리고) 저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그렇지만... 두렵지 않은 건가요? 당신이 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쉽게 결정할만한 문제도 아닐뿐더러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건 무척 어렵고 힘든 일이잖아요. (고개 살짝 숙여 시선 피하며) ... 강필, 제가 돌아가면 당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된대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힌다는 말이잖아요. (잠시 말이 없다가 힘겹게 입을 열고는 떨리는듯한 목소리로) 저만 당신을 영원히 기억한대요. 아무도 당신을 모르는 세상에서 저만, 존재하지 않아 만날 수도 없는 당신을요. ... 약혼반지부터 브로치까지, 당신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모두 지니고 돌아가지만 그곳에 당신만 없을 거라는 게...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아요. (...) 비록 당신은 정략결혼 상대일 뿐이며, 연씨 가를 몰락시킨 공작가의 자제이지만... 당신은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3년 전 그때, 여기서 말했죠. 당신은 단 한 번도 나를 놓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뜸 들이더니) 저도 마찬가지예요. (언제나 제 곁에 있을 거라고 말하셨는데 이건... 이루어지지 못할 약속이었나 봐요.) (그러나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 잠시 헤어지는 걸로 해요. 그 잠시가 얼마나 될진 모르겠지만,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 헤어지기 전에 당신의 속마음을 듣고 싶어요. 그냥... 이 혼담부터 저에 대한 당신의 생각까지. 굳이 말 안 해도 알 수 있다곤 하지만... 제가 이기적인 건지, 직접 당신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서요. ... 들려주실 수 있나요? (애써 입꼬리 끌어올려 미소 지으며 당신을 바라봐)
 
전강필:https://dufjrkwl.tistory.com/3 (PW.1001)
 
3년 전에도, 지금도 당신을 위해 온 삶을 내던질 각오를 한 그입니다.
 
오직 전강필의 죽음만이 당신의 모든 것을 되찾아줄 수 있습ㄴ디ㅏ.
 
오직 전강필의 죽음만이 당신의 모든 것을 되찾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너무나 증오하거나 사랑한다면,
 
함께 어딘가로 달아나 바로 곁에서 그의 생명이 바스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길어도 몇 개월이면 그는 숨을 거둘 것입니다.
 
고작 얼마 남지 않은 파멸의 길을 위해
 
...
 
다른 전부를 저버리는 게 옳은 일일까요.
 
연시우:... 그거면 됐어요. 충분해요. (아랫입술 잘근잘근 깨물었다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조금이라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건 너무 이기적이니까. 당신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내가 온전히 알지도 못하는데 무작정 도망치자고 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 설령 도망친다고 해도 그 미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것도 정말 이기적이네... (작게 실소를 흘리고는) 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요. 그러기도 하고, 우리가 잠시 헤어지기 전 당신의 소망이니까 나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잠시 헤어지긴 해도 오랫동안 못 보니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 더 한건 감히 바라지도 않아요. 손 한 번만 잡아도 될까요. ... 이미 많은 걸 얻고, 가져가기까지 하는데 당신의 온기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뜸) 미안해요. 거절해도 괜찮으니까요.
 
당신은 그의 제안대로 하기로 합니다.
 
모든 걸 잃은 당신에게 필은 자신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당신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평탄하게 살아갔겠죠.
 
이 선택이 자신의 삶에 치명적인 이라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한 것입니다.
 
전강필:잘 생각했어요. 당신도 이게 최선이라는 걸 알잖아요.
... 이 다음부터는 혼자서 할 수 있죠?
 
적어도 겉으로 본 강필은 무척이나 결연해서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마주한 그의 눈가가 살짝 떨립니다.
 
전강필:(당신의 손가락 끝부터 자신의 손가락을 맞대더니 이내 꽉 잡고 애써 웃어보여) 부디 행복해 주세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Ego nesciebam caritatem tuam donec occurram tibi.
Amica mea.
socius meus.
...
 
전강필은 더 말을 잇지 않고 뭔가를 읊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맨 앞으로 타르르 넘기듯,
 
당신 주변 풍경이 덧없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끝없이 달려온 숲,
 
검은 그림자,
 
백작가의 비밀,
 
덜컹거리던 마차 안,
 
깊은 잠에 들었던 전강필,
 
공작 저에서 맞은 아침,
 
차가웠던 지하,
 
모든 것이 이 영혼에 각인되어 평생을 함께할 것입니다.
 
...
 
그렇게 끊임없이 되감기는 기억 속에서 당신의 앞에 있던 강필이 점차 희미해집니다.
 
전강필:... 당신과 결혼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옅어지고,
 
흩어졌다가,
 
사라집니다.
 
이별이란 이렇게나 덧없고 허무한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억의 전환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멈춥니다.
 
익숙한 가구,
 
익숙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당신은 자신의 방에 서 있습니다.
 
탁자 위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린 달력이 보입니다.
 
6월 14일.
 
정확히 90일 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문득 마주한 거울 속 자신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아 축축하게 젖은 옷,
 
강필이 준 브로치,
 
그가 건넨 가방과 안에 든 것들 전부.
 
단 하나,
 
그가 곁에 없다는 걸 빼고는요.
 
그러나 당신만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는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차례겠죠.
 
전강필 로스트, 연시우 생환
 
이성 1d6 회복
 
당신은 과거로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