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ison in the Wine
시나리오 링크 : https://twitter.com/Hyeonyu_CoC/status/1359466738195206150?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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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7
The Poison in the Wine
w.현유
KPC.랭거
PC.엘타 베인
내일은 당신이 결혼하는 날입니다.
당연하게도 이 시대의 흔하디흔한 정략결혼입니다만,
특별한 점은 결혼 상대가 이 나라에서 가장 명망 높은 가문의 자제인 랭거라는 것입니다.
외출을 준비하는 당신 앞에서 부모님이 들뜬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겠죠.
백작:약혼식을 올리고 벌써 두 달이나 지났다니.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엘타 베인:옛날부터 마음이 맞던 상대니까요. 서로가 좋으니 다행인 거죠.
백작:그래그래, 실망 당하지 않도록 잘 대해드리거라.
이쯤에서 이 집안의 위치를 되짚어 볼까요.
사실은 당신도 상대만큼은 아니라도 훌륭한 귀족가였습니다.
물론 그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보다 훨씬 더요.
...
평생 끄떡없을 것만 같았던 가문이 난데없이 기운 적 있습니다.
집안은 무거운 누명을 뒤집어썼고,
사업은 줄줄이 실패하여 끝없이 추락하기만 했죠.
그 모든 게 한순간이었으나,
당신의 가족에게는 기회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단번에 찾아오게 됩니다.
얼마 가지 않아 가문은 다시 오명을 벗고 예전만큼은 아닐지라도 충분한 부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가문의 몰락과 재흥의 공통점은 아무도 어찌 된 건지 모르며 눈 깜짝할 새에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전혀 짚이는 게 없습니다.
말도 안 되지만 신의 개입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요?
기껏해야 지루하단 이유로 가문 하나를 뒤집었다가 되돌려놓았다든가.
이상한 소리지만 그나마 이런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도 당신뿐입니다.
다들 당신의 부흥을 자축하기에 바쁩니다.
어쨌든 베인가는 그렇게 살아남아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 힘쓰던 차였습니다.
석 달 전,
켈론가가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는요.
백작부인:거기엔 이게 어울릴 것 같은데 달고 가렴.
어머니가 당신의 보석함에서 브로치를 꺼냅니다.
엘타 베인:네, 역시 어머니는 눈이 좋으시네요. (브로치를 받아 옷에 단다) 잘 어울리나요?
백작부인:(입을 가리고 싱긋 웃더니) 우리 아들인데 안 어울릴 수가 있겠니?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진 생각나지 않지만,
간혹 보는 저 브로치가 왠지 싫진 않네요.
어디 목 부근이나 가슴께같이 잘 보이는 곳에 달아둘까요.
엘타 베인:(목 부근에 단 브로치를 툭 건들며) 상대도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네요.
새빨갛게 빛나는 브로치가 제법 잘 어울립니다.
...
이제 슬슬 바깥에 대기 중인 마차에 올라탈 시간입니다.
당신을 배웅하는 부모님의 기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옵니다.
백작:최근에는 걱정 없이 경사스러운 일뿐이군!
...
켈론 가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숲이 있습니다.
오직 공작 저와 백작 저만을 이어주기에,
두 가문원들이 서로 왕래하는 데에만 이용되어 왔죠.
이곳의 쓸쓸하면서 고즈넉한 풍경은 늘 당신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곤 했습니다.
엘타 베인:나중에는 좀 더 꾸며야 겠는데.
뒤돌아보면 숲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기분을요.
그러나 나무들이 정말로 누군가를 불렀다고 해도,
그저 모두가 잠깐 스치는 장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참을 달린 끝에 마차는 공작 저에 도착합니다.
해가 서서히 저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곧장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가면 당신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을 마주합니다.
사용인:엘타님 드십니다.
뒤에서 울리는 사용인의 말에 랭거가 일어나 고개를 숙입니다.
찰나였지만 이쪽을 보는 얼굴이 분명 굳어 있었죠.
그러나 아무렇지 않게 그는 다시 착석하고,
당신 또한 안내받은 자리에 앉습니다.
랭거와 대각선에 놓인 위치입니다.
그리고 무심코 바라본 식탁 위 만찬 사이에서 와인병 하나가 눈에 띕니다.
엘타 베인:
지금까지 당신은 수많은 와인을 접했으나 저건 정말로 처음 봅니다.
무척 고급스럽긴 한데,
특별한 날이라고 주문 제작이라도 맡긴 걸까요?
이 상황이 긴장되는지 고작 와인인데도 신경이 쓰입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찝찝한 감각은 괜히 찾아오기도 하는 거죠.
그 틈에 하인들을 전부 밖으로 물린 랭거에게서 다시 긴장한 기색이 드러납니다.
랭거 켈론:그동안 잘 지냈어? 결혼 전에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둘만의 자리를 마련해 봤어.
엘타 베인:나야 잘 지냈지. 요즘에는 경사스러운 일 뿐이야. 이 자리도 마음에 들고. 랭거는 무슨 일 없었지?
랭거 켈론:음, 잘 지냈다니 그리고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무슨 일은... 나도 잘 지냈지. 그나저나 그 브로치... 되게 잘 어울리네.
잠시간 랭거가 당신의 브로치에 시선을 둡니다.
흘긋 본 그의 약지에는 당신과 같은 약혼반지가 있습니다.
내일이면 결혼반지가 저 자리를 대체하게 되겠죠.
그대로 적막이 흘러 어색함이 감돌 즈음에,
그가 놓여 있던 와인병을 들어 보입니다.
랭거 켈론:이 자리를 위해 준비한 건데, 어때?
엘타 베인:주문 제작한 건가봐? 처음보는 와인이네. 좀 감동인데?
랭거 켈론:특별하지~ 하하, 감동이야? 그래서 같이 마셔줄 거지?
엘타 베인:당연하지. 이 자리를 위해 랭거가 특별히 준비한 거라며? 맛이 기대되네.
랭거 켈론:흔쾌히 받아줘서 기쁘네!
랭거가 천천히 병을 기울이자 들어 있던 액체가 잔 속으로 떨어져 내립니다.
세상 무엇보다 진하고 불길한 검붉은 색입니다.
그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합니다.
랭거 켈론:건배할까? 우리의 결혼을 위해.
엘타 베인:(같이 들어 올리며 싱긋 웃는다) 그래, 우리의 결혼을 위해.
챙그랑.
유리잔끼리 부딪치는 맑은소리가 울리고 랭거는 잔을 입가에 가져다 댑니다.
그를 따라 와인을 마시려는데,
순식간이었습니다.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
코앞까지 다가온 랭거로 인해 공기가 온몸에 달라붙는 느낌과 동시에 훅 끼쳐오는 와인의 향,
그리고 생생하게 맞물리는 입술의 감촉까지.
모든 것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반응할 겨를도 없이 벌어진 틈새로 랭거가 머금고 있던 와인이 흘러들어옵니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지요.
이윽고 그가 멀어지며 참담한 눈빛을 보입니다.
랭거 켈론:......엘타.
엘타 베인:...랭거?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면,
그 순간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고 맙니다.
목구멍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지는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에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랭거는 그런 당신을 가만히 내려다볼 뿐입니다.
흐려지는 시야 틈에서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립니다.
랭거 켈론:나를 원망해도 좋아.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의식을 잃습니다.
엘타 베인:3
...
깜빡.
정신이 들자마자 축축한 지하의 냉기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딱딱한 바닥에서부터 찬 기운이 그대로 당신을 타고 올라옵니다.
문득 아득하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바로 보이는 쇠창살 너머 혼자서 이 앞을 지키고 있던 사용인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는 흠칫 놀라다 말곤 이내 목전까지 가까워진 발소리를 향해 깍듯이 인사합니다.
사용인:도련님, 마침 깨어났습니다.
랭거 켈론:응~ 수고했어. 이제 내가 지켜볼게.
그 익숙한 음성에 사용인은 자리를 뜨고,
이윽고 모습을 드러내는 건 예상했듯이 랭거입니다.
감정을 읽기 힘든 싸늘한 눈빛이 당신에게 꽃힙니다.
거기서 약간 시선을 내리면 철창을 쥔 한 손의 약혼반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당신과 마찬가지로요.
랭거 켈론:거의 하루 만에 깨어났네. 궁금한 게 많을 거라는 거 알아.
엘타 베인:왜... 이런 짓을 한 거야? 대체 왜..?
랭거는 아무런 답도 변명도 하지 않습니다.
단지 빵 한 조각과 신문을 철창 안으로 밀어 넣을 뿐입니다.
랭거 켈론: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우리는 부부가 되었겠지?
랭거는 곧바로 이곳을 떠납니다.
평소의 그보다 훨씬 매몰차고 날카로운 모습입니다.
엘타 베인:무슨... 랭거...?
아,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랭거가 따랐던 그 와인이 문제였던 걸까요?
조금 전 그의 태도까지 더해서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이었음을 확신합니다.
엘타 베인:
당신은 철창에 갇혀 벽 램프 빛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무심코 몸을 살펴보니 달아두었던 브로치도 사라졌네요.
언제부터 잃어버렸을까요
이제 당신에게 남은 건 빵조각과
신문뿐입니다.
엘타 베인:...대체 어디서부터 거짓이었던 거야. (신문을 들여다본다)
결혼식 당일, 즉 오늘 아침에 발행된 대중지입니다.
신문 헤드라인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띕니다.
엘타 베인:이게 뭐야. 모두 죽었다고? 저택의 모두가..?
많은 이들이 보는 검증된 신문인 만큼,
당신은 적혀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믿기 어렵겠죠.
자신의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참히 몰살당하다니요.
엘타 베인:
...
현실에서 붕 뜬 감각과 무력감이 몰려오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순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유일한 탈출구인 철창의 문을 살피면 반대편에 열쇠 구멍이 나 있습니다.
마침 바깥에 떨어져 있던 열쇠 하나가 램프의 빛에 반짝입니다.
쇠창살 기둥 사이로 손을 뻗으면 겨우 닿을 거리입니다.
엘타 베인:(시선을 돌려 빵을 살펴본다)
깨끗한 빵조각입니다.
랭거의 말대로라면 꼬박 하루를 굶은 거군요.
엘타 베인:하루아침에 쥐새끼라도 된 기분이네. (빵조각을 찢어서 버린다)
깨끗했던 빵조각은 더 잘게 찢어져서 차가운 바닥에 떨어집니다.
...
엘타 베인:믿었는데, 그러면 안 됐었나봐. (잠시 가만히 있다가 기둥 사이로 손을 뻗어 열쇠를 잡으려 한다)
정황상 열쇠가 여기서 나갈 방법인 게 틀림없습니다.
다시 손만 밖으로 빼서 열쇠 구멍에 끼워 돌리면 문은 열릴 테죠.
그런데……
엘타 베인:
조금 전에 만난 랭거가 머릿속을 스칩니다.
그러고 보니 분명 허리춤에 이 열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았던 그 모습이 왜 이리 선명할까요.
랭거가 의도적으로 이걸 떨어뜨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엘타 베인:설마... (열쇠를 만지작 거린다) 이대로 나가야 하나?
당신은 철창 밖으로 나가나요?
아니면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할까요?
엘타 베인:일부러든 아니든. 지금은 네 뜻대로 해줄게. (열쇠로 철장을 연다)
철문이 바닥에 끌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철창에서 나옵니다.
그대로 암흑 속에서 벽을 짚으며 나아가면 얼마 안 가 위로 향하는 계단을 마주합니다.
그 끝에 다다라 굳게 닫힌 문을 열면 어두운 저택의 홀이 나옵니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치는 이곳은 어딘가 눈에 익습니다.
켈론가의 저택.
여긴 당신과 달리 어제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 2층 계단에서 이쪽으로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두 명인 것 같은데,
당장 숨을 곳은 계단 뒤쪽 공간뿐입니다.
엘타 베인:(서둘러 계단 뒤쪽으로 숨는다)
그대로 있으면 곧 1층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대화가 들립니다.
랭거와 사용인이군요.
사용인:도련님, 정말 저대로 가둬두기만 해도 되나요?
랭거 켈론:걱정하지 마. 지켜보다가 잠깐 나온 건데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네? 이만 돌아가.
그 말에 사용인은 사라지고 랭거만이 남습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망설임 없이 이쪽으로 성큼 다가오네요.
당신은 피할 겨를도 없이 그와 직면합니다.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는 랭거는 오히려 이 순간을 예상이라도 한 눈치입니다.
랭거 켈론:역시 빠져나왔구나? 말하고 싶은 게 많겠지만 여기서는 안 돼. 다들 당신이 여전히 지하에 있는 줄 알테니까.
엘타 베인:네 말을 들어야하는게 화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네 뜻대로 해줄게. (조용히 따라간다)
둘은 고요한 2층 복도를 지나쳐 랭거의 방 앞에 도착합니다.
랭거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책상 너머 벽에 가족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공작 내외와 열두 살쯤으로 보이는 랭거네요.
엘타 베인:
액자 속 단란한 가족에게서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잠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랭거가 묻습니다.
랭거 켈론:내가 준 신문 읽었어?
엘타 베인:그래, 아주 잘 읽었다. 네가 한 짓이냐?
랭거의 눈동자에 어째선지 허탈함이 비칩니다.
그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랭거 켈론:당신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믿어. 하지만 네 집안을 무너뜨린 건 내가 아니라, 내 가문이야.
엘타 베인:켈론 가가? 대체 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짓을. (마른세수만 하다가 나직이 말한다) 너는 알고 있었던 거지? 그래서 나를 부르고, 잡아서 가둬둔 거냐? 왜 나만?
랭거의 말대로라면 탐사자의 몰락은 그의 뜻이 아닌 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가문은 어째서 당신의 집안을 멸했을까요.
랭거는 왜 당신에게 독을 먹였을까요?
그 두 가지가 별개의 일이라는 건데,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랭거도 결국은,
랭거 켈론:(장시간 침묵하다가) 나 또한 당신과 당신 가족의 원수겠지. 그러니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날 죽여도 좋아. 날붙이로 찌르든 목을 조르든 기꺼이 죽어줄 테니까. 하지만 당장 그렇게 해선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어.
저 가라앉은 목소리,
저 두 눈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장 자세한 설명을 해줄 것 같진 않지만 무척이나 절박한 태도임은 분명합니다.
당신도 아닌 랭거가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일까요.
엘타 베인:하, 왜 그러는 거야? 이제 난 아무것도 없는 이름만 귀족인데. (네 목을 잡고 끌어당긴다. 손아귀에 힘을 주며) 널 죽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해선 칼론은 계속 남아있을 테니까. 지금은 널 죽이지 않을게. (천천히 손아귀에서 힘을 빼곤) 난 칼론 가를 없앨 거야. 그래도 넌 나를 도울 수 있어? 네 모든 걸 앗아가려고 하는 나를?
랭거 켈론:(...) 글쎄. 왜 이러는 걸까? (당신이 끌어당기자 고개 들곤 입맞춰) 하하... 아쉽게 됐네. (눈동자 이리저리 굴리다가 당신 말에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 도울 수 있어. 도울거야. 당신이 원하는 길이 그 쪽이라면 (...) 따라야지. 도운다고 했잖아?
엘타 베인:(입술에 닿은 감촉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목을 잡은 채 뺨을 내리친다. 내리친 빰을 붙잡고 고개를 들려 작게 헛웃음을 흘리곤) 칼론 가도 안 됐네.후계자가 이렇게 미치광이일줄은 몰랐을 텐데. 난 널 용서할 생각이 없어. 적어도 이대로라면 영원히 없겠지. 난 네가 괴로워했으면 좋겠어. 나만큼, 아니 그보다 더.
랭거 켈론:(피식 웃더니 제 입술 한 번 핥짝이고) ...아, 엘타. 아파. 그러게 후계자가 이렇게 미치광이라서 어떡하지? 그래, 날 용서하지 마. 켈론가도 용서하지 말고 죽을때까지 원망해. 그걸로 당신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 괴로워 했으면... 이라... 그렇게 될 길 간절히 빌게. 노력도 해보고.
그때,
똑,
똑,
똑,
똑,
네 번의 노크가 방문을 두드립니다.
한밤중에 사용인이 찾아오는 일은 드문 만큼 급한 용무일 텐데요.
랭거가 조금 당황합니다.
랭거 켈론:빨리 숨어! 지금 들키면 정말 끝이야.
...
책상 밑이나 침대 옆이 적당해 보입니다.
엘타 베인:적당히 처신해. (침대 옆으로 숨는다)
랭거 켈론:들어와.
랭거가 대답하자마자 사용인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제법 거리가 있지만 귀를 기울이면 조금은 대화를 들을 수 있을지도요.
엘타 베인:(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엘타 베인:
랭거 켈론:지금 돌아오셨다고? 내일 오전에 뵙기로 했는데.
사용인:네, 잠깐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랭거는 고개를 끄덕이곤 사용인과 함께 방을 나섭니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마주친 눈이 여기에 있으라고 당부하네요.
...
이제 다시 혼자 남았습니다.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랭거의 의중에 관한 단서를 찾으려면 지금이겠죠.
신경 쓰이는 곳은 책상과 책장,
그리고 벽난로 정도입니다.
엘타 베인:누가 돌아왔다는 건지. (조용히 책상을 살펴본다)
책상 위에는 문서 더미가 놓여있고,
아래에는 서랍 두 칸이 달려 있습니다.
엘타 베인:(문서 더미를 뒤진다)
중요하지 않은 문서들 사이에서 편지 한 장을 발견합니다.
짤막한 편지에는 누구의 이름도 없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과 이 방의 주인을 안다면 누가 언제쯤 편지를 쓴 건지 유추 가능합니다.
약혼식 준비,
계획,
인정...
...
랭거를 믿어도 될까요?
엘타 베인:하, 그렇게 믿어달라고 했으면서 이런 거나 흘리고 다니면 믿어줄 수가 없잖아. (편지를 내려놓고 첫 번째 서랍을 열어본다)
첫 번째 칸은 잠겨있습니다.
엘타 베인:그래도 어느정도는 숨겨놓는 건가. (두 번째 서랍을 열어본다)
두 번째 칸에는 낡은 일기장이 있습니다.
일기장의 연도는 랭거가 열두 살이었을 때입니다.
가정 교사가 글 쓰는 습관을 위해 일기를 권장했다는 글이 맨 앞에 있고,
달리 신경 쓰이는 내용은 순서대로 이와 같습니다.
일기를 읽는 도중 어느 페이지에 꽂혀 있던 메모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엘타 베인:이게 다 뭐야. 일이 어디까지 돌아가는 건지. (메모를 주워 확인한다)
라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엘타 베인:3년 전이라면, 랭거랑 처음 만났을 때와 얼추 비슷한데. 숲은 어딜 말하는 거지? (책장을 살펴본다)
다양한 서적이 가득한 책장에는 수상한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책이나 랭거가 숨겨둔 무언가라든가...
엘타 베인:(책 몇 권을 빼보기도 하며 책장을 뒤진다)
엘타 베인:
책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띕니다.
제목이 적혀 있지 않은 가죽 표지는 온통 벗겨지고 낡았으나 기묘한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이상한 이끌림에 뒤늦게 정신 차리면,
손은 이미 책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펼친 페이지에는 점액에 끈끈하게 붙어 있는 벌레알 같은 구체들을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엘타 베인:걔는 뭔 이런 책을 보는 거지? (인상을 찌푸린다)
석탄으로 때운 주황빛 불꽃이 넘실거리는 난로가 방을 데웁니다.
그 앞에 타다 만 종이 쪼가리가 떨어져 있습니다.
엘타 베인:뭘 태웠나? (종이 쪼가리를 줍는다)
종이는 지면 대부분이 불에 그을렸으나, 내용 일부는 그나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불타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의 날짜가 쓰여 있습니다.
엘타 베인:3년 전 걸 왜 지금 태운 거지. (종이 쪼가리를 이리저리 보다가 다시 난로 안에 던져넣는다)
...
그때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방문이 열립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요.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당신을 응시하던 랭거는 이내 시선을 거둡니다.
서로 간의 불필요한 눈 마주침은 최대한 피하려는 눈치입니다.
랭거 켈론:잠깐 구경이라도 했어?
태연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입니다.
랭거 켈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왔어. 당신 저택에서 방금 돌아오셨거든.
엘타 베인:그 사람, 네 진짜 아버지는 맞아? (피식 웃는다)
랭거 켈론:(미간 사이 좁히고)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짧게 한숨 쉬어) 표면상으로는 그저 결혼 상대 가문을 애도하러 간 것뿐이지만, 글쎄...
그는 아침 일찍 돌아오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급히 방을 나갑니다.
대화가 더 이어지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합니다.
랭거는 매정하게 굴려고 애쓰면서도 그러질 못하니까요.
독을 먹인 건 그렇다 쳐도,
탈출을 도운 것부터 이렇게 숨겨주기까지.
매번 손을 내미는 건 분명한 그의 의지였습니다.
저 일관되지 않은 언행에도 까닭이 있을까요?
손가락의 약혼반지는 어째서 그대로인지,
이제 그런 건 아무 소용 없는데도요.
여전히 랭거의 속내는 알 길이 없습니다.
...
눈을 뜬 지 얼마 안 됐지만 독의 여파로 온몸이 무겁습니다.
당장 여기보다 안전한 곳도 없으니 이대로 다시 눈을 감을까요.
엘타 베인:(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 거리다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
대낮부터 사람들의 곡성이 터져 나옵니다.
여긴 당신의 저택이네요.
비탄 섞인 대화는 살짝 열려 있는 부모님의 침실 문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볼까요.
엘타 베인:(잠시 멈칫 했다가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 대화가 이어지는 한편 반대쪽에서는 다른 이들이 통곡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어지러운 저택 한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손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내려다보면
브로치가
랭거 켈론:엘타, 일어날 시간이야.
엘타 베인:...아.
익숙한 음성이 당신을 깨웁니다.
하필 이런 때에 3년 전 일을 꿈으로 꾸다니요.
그 당시에도 잃어버린 브로치를 가지고 있었던가요.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랭거가 커튼을 걷자 이른 새벽빛이 그의 창백한 안색을 비춥니다.
밤을 지새우기라도 한 걸까요?
당신이 일어난 걸 확인한 그는 무뚝뚝하게 돌아섭니다.
랭거 켈론:나한테 계획이 있다고 했지? 우선 이 집안의 사용인으로 위장하고 이동하자.
엘타 베인:내 얼굴을 아는 자들도 있을 텐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랭거 켈론: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잘 피해다녀.
당신은 탁자에 놓여 있는 하인복을 발견합니다.
랭거 켈론:이 정도는 혼자 갈아입을 수 있지?
엘타 베인:하, 그래. 네가 시중 들어줄 것도 아니니 혼자 해야지. (하인복을 집어든다) 나가있기나 해.
랭거는 준비가 다 되면 나오라고 하고는 밖에서 기다립니다.
엘타 베인:참,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천천히 하인복으로 갈아입고 나간다)
...
사용인 차림으로 복도로 나오면 랭거가 서 있습니다.
창밖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지켜보던 그는 당신을 발견하곤 곧장 다가옵니다.
랭거 켈론:슬슬 1층에서 사용인들이 움직일 시간이야. 당신이 그들한테서 몰래 가져와야 하는 게 있어.
엘타 베인:해야할 것도 많네. 그래서 그게 뭔데?
랭거 켈론:음, 서재 열쇠 좀 찾아 줘. 오늘 그곳을 청소하는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거야. 난 거기에 함부로 못 들어가거든.
엘타 베인:그래. 서재 열쇠란 말이지. 복수를 위해서라면야, 알았어.
랭거 켈론:동행하면 더 눈에 뛸 거니까. 이 집안 전체가 나를 주시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
1층으로 내려갈까요?
엘타 베인:(고개 한 번 끄덕이고 조용히 1층으로 내려간다)
랭거는 당신이 1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봅니다.
넓게 깔린 붉은 융단과 금으로 장식된 새하얀 기둥,
그리고 조각상으로 채워진 화려한 홀을 사용인들이 지나다닙니다.
보아하니 하인들은 훨씬 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슬슬 일할 시간이라던 랭거의 말과는 다른데요.
어찌 됐든 모두가 평소보다 일찍 움직이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겠죠.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1층을 돌아봅시다.
엘타 베인:(조용히 홀을 둘러본다)
분주해 보이는 사용인들은 당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쑥덕거림이 새어 나옵니다.
엘타 베인:
사용인:우리가 못 찾으면 정말 큰일인데.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말소리는 그대로 멀어집니다.
당신의 탈출이 알려진 것 같습니다.
엘타 베인:그렇게 유리한 상황은 아닌 것 같네. (식당으로 걸어간다)
당신이 쓰러진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불쾌하게도 모든 것이 인위적일 만큼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눈길이 닿은 창가에 누군가가 흘려 쓴 문장이 있습니다
엘타 베인:(저런 게 왜 남겨져 있는 거지)
딱히 더 볼만 한 건 없어 보입니다.
엘타 베인:(여긴 아닌 건가)(응접실로 걸어간다)
사람이 없는 응접실은 유독 어둡고 냉한 기운이 감돕니다.
둥근 탁자 위에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듯합니다.
엘타 베인:(조용히 다가가 편지를 펼쳐본다)
내용을 다 읽자마자 편지는 허공의 먼지가 되어 사라집니다.
방금 뭐였죠?
엘타 베인:
만약 공작에게 보내온 편지라면,
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누굴까요?
엘타 베인:(벽난로에 있던 것과 같은 사람이 쓴 거려나)
각종 자재를 분류해둔 대형 창고입니다.
입구를 기웃거리면 지나가던 하인과 부딪힙니다.
하인:미안. 바빠서.
그는 급히 어두운 창고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빈 선반에 열쇠 하나를 탁 소리 나게 올려두고 뭔가를 찾습니다.
열쇠에 입구 쪽 빛이 닿아 '서재'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몰래 가져갈까요?
엘타 베인:(저건가 보네) (조용히 열쇠를 가져간다)
엘타 베인: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사용인은 당신의 행동을 보지 못합니다.
덕분에 쉽게 열쇠를 얻었으니 어서 자리를 뜨는 게 좋겠습니다.
엘타 베인:(서둘러 창고를 나와 지하실로 걸어간다)
지하실로 통하는 문 주변을 하인들이 샅샅이 뒤지고 있습니다.
어떤 흔적,
예를 들면 탈출한 이의 종적이라도 찾는 모양입니다.
눈에 띄어서 좋은 일은 없으니 그대로 돌아서려는데
말 한마디가 귀에 박힙니다.
하인:혹시 도련님이 일부러 도와주신 건 아닐까? 3년 전에도 이상하게 그쪽 집안을 감쌌잖아.
사용인:그때 처음으로 그분이 가문의 뜻에 반기를 들었으니… 이후로 계속 주인어른께 밉보이셨지.
하인:그것보다 난 공작가가 왜 백작가를 가만히 못 두는지 모르겠어. 그 땅 밑에 꿀이라도 흐르나?
사용인:에이, 아무튼 이런 얘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우린 말 그대로 죽음이라고.
둘은 대화를 멈추고 다른 하인들 틈으로 사라집니다.
사용인들은 전부 이 집안을 두려워하고 충성하는 듯해서,
그들에게 들킨다면 큰일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엘타 베인:(다 똑같네) (밖으로 나간다)
이제 서재 열쇠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알아낸 것들에 의하면 랭거는 확실히 당신을 도울 모양입니다.
게다가 3년 전에도 그가 베인가를 감쌌다던데,
하필 그때 있었던 집안의 일도 이 가문과 엮여 있었나 하는 생각은 들 수밖에 없습니다.
랭거 켈론:엘타! 열쇠는 구했어?
문득 랭거가 뒤에서 나타나 속삭입니다.
엘타 베인:그래, 잘 구해왔다. (서재 열쇠를 보여준다)
이제 서재 열쇠도 찾았고,
보는 눈이 없는 걸 확인한 그는 재빨리 당신을 2층으로 이끕니다.
아직 오전이지만 갑작스레 몰려든 먹구름 탓에 하늘이 흐리네요.
하인들은 다른 일로 바빠서인지 이 층엔 둘뿐입니다.
잠시 뒤 랭거의 침실 반대편 서재 앞에 도착하자 그가 멈춥니다.
랭거 켈론:여기야.
엘타 베인:뭐가 있을지 궁금하네. (열쇠로 서재를 연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 빽빽하게 들어선 책들 특유의 향이 풍겨옵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잉크와 펜이 놓인 책상이 있습니다.
랭거가 서재의 문을 닫으며 뒤따라 들어옵니다.
랭거 켈론:여긴 항상 잠겨 있어. 하인들도 청소할 때만 드나들고, 나도 명분이 없으면 올 수 없는 곳이야.
그런 말을 하며 그가 책장을 빙 둘러보는데,
엘타 베인:
복도에서부터 점점 이쪽과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격앙된 걸음걸이에 다가오는 이의 불안정한 심리가 드러납니다.
랭거도 같은 걸 느낀 듯 다급히 당신을 돌아봅니다.
랭거 켈론:이제 곧 들어올 사람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얼굴도 절대 보이지 마.
엘타 베인:...알았어.
랭거 켈론:당신을 날 감시하기 위해 서재에 함께 온 사용인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쾅 열리고,
동시에 랭거가 당신을 밀쳐내어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서재 안으로 들어온 저택의 주인은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책상 의자에 앉습니다.
엘타 베인:(순순히 밀려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다)
공작:…스스로 감시를 붙인 듯하니 여기에 들어온 이유는 굳이 묻지 않겠다.
공작:네 부탁대로 약혼까지 시켜줬으나 결과가 말이 아니구나.
공작은 개미 몇 마리쯤의 죽음을 얘기하듯이 백작가의 절멸을 읊습니다.
당신은 묵묵히 그 말을 듣고 있는 랭거가 원수의 일원임을 새삼 직시합니다.
엘타 베인:(안보이게 주먹을 꽉 쥔다)
랭거가 끝까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자,
그의 양부는 억누르던 분노를 터뜨립니다.
공작:어떻게,
책상 위 잉크병이 바닥으로 내쳐지며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깨진 파편이 검푸른 잉크와 함께 바닥으로 튀는 한편,
당신은 분노와 어둠으로 점철된 형상을 목격합니다.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요?
방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칠흑이 공작을 삼켜버리더니 랭거에게 달려듭니다.
동시에 솟아오른 검은 파도가 랭거의 모습을 완전히 가리고,
어두운 연기가 사방에 피어오릅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일이 쉽사리 믿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악마가 존재한다면 분명히 저런 모습일 테죠.
비현실적인 광경을 목도한 엘타 베인.
엘타 베인:
현실 같지 않은 상황은 한순간에 제자리를 찾습니다.
악마는 다시 이 나라의 명망 있는 공작으로 돌아와,
기품과 오만이 어린 얼굴로 죽어가는 자신의 양자를 내려다봅니다.
공작:…나는 너를 우리 집안의 훌륭한 방패막이로 길렀다.
공작은 서재의 문을 열어 그대로 천천히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말 몇 마디를 남기고서요.
공작:…아직 너는 쓸모가 많으니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공작:이 집안에 둘 이유도 없어지겠지.
다시 고요해진 서재엔 쓰러진 랭거의 옅은 숨소리만이 떠돕니다.
엘타 베인:(분노 때문인지 가만히 떨다가 랭거한테 다가가 상태를 살핀다) 랭거, 정신차려.
다가가서 그의 상태를 확인하면 온몸이 상처로 가득합니다.
마치 칼날에 베인 것만 같습니다.
기이하게도 모두 동일한 깊이,
동일한 길이로요.
다행히 피는 흐르지 않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의 양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어쩌다 이런 깊은 세상의 비밀을 보게 된 걸까요.
랭거 켈론:... ...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
엘타 베인:닥쳐. 말하지마. 그냥, 가만히 있기나 해. (겉옷을 벗어 랭거한테 둘러준다) 차라리 결혼식을 안 올린 게 다행이네. 저런 괴물을 아버님으로 모시고 싶진 않거든.
랭거 켈론:...하하, 그런가? 마찬가지야. 결혼했다면 (...) 글쎄. 어차피 내가 막았겠지만. 알았어. 딱 한 마디만 더 할게. (얕은 숨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고)
자조적인 웃음을 짓던 랭거는 떨리는 손으로 구석의 책장을 가리킵니다.
랭거 켈론: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와 같다면... 저기에 우리가 찾는 책이 있을 거야.
엘타 베인:그래, 꼭 찾아서 네 몫까지 복수해주지. (랭거가 가르킨 책장 쪽을 살펴본다)
엘타 베인:
몇 열의 책들 사이에서 시선을 끄는 서적을 발견합니다.
낡은 장서는 전체가 라틴어로 필사되어 있는 듯한데,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표지 제목인
"시간과 공간에 맞닿아 있는 존재"뿐입니다.
발견한 것을 보이자 랭거가 천천히 일어나 다가옵니다.
랭거가 힘없이 서적을 넘기다 보면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집니다.
랭거 켈론:... 당신이 읽어 봐.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엘타 베인:이게 그 중요한 비밀이라는 거냐. (종이를 주워 읽어본다)
당신이 살펴보면 조잡한 삽화와 모국어로 적혀 있는 내용을 발견합니다.
랭거 켈론:...우선 방으로 돌아가자.
엘타 베인:그래야겠네. ...너도 좀 쉬어야할 것 같고. (천천히 방으로 걸어간다)
랭거는 서적을 챙기곤 위태로운 걸음을 옮깁니다.
금방이라도 다시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 유쾌하진 않네요.
엘타 베인:쯧. (랭거를 부축해준다)
...
방문을 열자마자 창밖의 회색 구름 가득 낀 하늘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랭거는 문빗장을 걸고 어두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침대 위로 쓰러집니다.
품에 아까 찾은 책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고서요.
랭거 켈론:...이것만 사라진다면 공작가는 한순간에 무너질 거야.
이제 보니 뺨이 붉고 호흡은 아까보다 훨씬 불안정합니다.
엘타 베인:그건 그렇다 치고. 넌, 괜찮은 거냐?
중간중간 새어 나오는 신음성과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위독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랭거 켈론:... 내 집안은, 그러니까 공작가는...
랭거 켈론:적어도 엘타, 당신만은 이런 일에 엮이지 않길 바랐어.
엘타 베인:그만.
랭거 켈론:...하아, 내가 당신한테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건 알아.
랭거의 온전치 못한 정신 때문에 뒤죽박죽이었던 이야기가 끊겼다가,
잠깐의 침묵 끝에 다시 이어집니다.
랭거 켈론:...
엘타 베인:(천천히 팔을 들어 너를 안아준다) 멍청한 자식. 죽지나 말고 얌전히 쉬어.
...
랭거는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습니다.
랭거 켈론:...이런 지긋지긋한 곳에서... 보고 있기 힘들 사람과 꼬박 하루를 견뎠네.
당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정신을 잃은 듯이 잠드는 랭거입니다.
엘타 베인:그걸 이제 알았냐. 적어도 이틀 전까지 난 널 진심으로 사랑했어. 뭐, 어차피 자고 있어서 못 듣겠지만.
...
공허한 가을바람이 이따금 유리창을 두드립니다.
...
툭.
나뭇잎 끝에서 떨어진 빗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소리 없는 부슬비를 피해 잠깐 들어온 나무 아래입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 숲에는 혼자만이 남은 것 같습니다.
아니, 혼자는 아닌가요.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보면 바로 곁에 있던 이가 속삭입니다.
얼굴이 뿌옇게 보여서 누구인지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걱정……
저택으로 돌아가면 전부……
평생 오늘을……
대신 이 숲과 내가……
그리고 하나는 알아줘.
말 몇 마디가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고 공중에 흩어집니다.
하나 같이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 얼굴도,
목소리도.
꿈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래요,
이건 꿈이었죠.
그러니까 이런 본 적도 없는 상황을 겪는 거예요.
딱 하나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어느새 손에 쥐어진 브로치……
...
아,
저도 모르게 따라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고개를 들면 랭거가 상체만 일으킨 채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후 한 시쯤 되었는데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아요.
이윽고 랭거가 잔잔한 시선으로 당신을 봅니다.
랭거 켈론:일어났어? 슬슬 당신 저택으로 떠날까 하는데.
엘타 베인:그래서 우리 가문을 그렇게 노렸던 건가. 갈 거면 어서 가자. 또 그 괴물이 낌새를 눈치채기 전에.
랭거 켈론:(고개 느릿하게 끄덕이고) 얼른 준비하는 게 좋겠지. 선수치기 당하면 안되니까.
랭거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합니다.
미리 준비해둔 가방에 서재에서 가져온 책과 빈 자루를 집어넣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 잠겨 있던 책상 서랍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살짝 내민 손에 당신의 브로치가 놓여 있네요.
랭거 켈론:이만 당신한테 돌려줄게.
역시 단순히 잃어버린 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마냥 평범한 브로치 같진 않은데요.
여기에 무슨 가치가 있어서 저리 말하는 걸까요?
엘타 베인:이 브로치가 뭔데 그래? 알고 있는 거라도 있어?
랭거 켈론:(살짝 웃어 보이고) 모든 일이 끝나면 알려주는 걸로 할까?
랭거는 천천히 방문을 엽니다.
랭거 켈론:그거, 다시 잘 보이는 곳에 달아줘.
엘타 베인:(브로치를 목 부근에 달고 따라간다) 그래, 어서 이 빌어먹을 켈론 가를 끝내러 가자고.
저택 밖으로 나오기까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 집안의 자제가 외출할 예정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아무도 랭거를 도울 상황이 아니었던 거지요.
그러나 덕분에 둘은 쉽게 저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랭거가 마부에게 목적지를 알리는 사이 당신은 마차에 오르고,
뒤이어 그가 탑승하자 마차는 아무 의심도 없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마차는 다시 숲을 지나고 있습니다.
가끔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창밖으로 나무들이 스쳐 갑니다.
채도가 낮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숲은 여전히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그런 기분을 느낀 건 당신만이 아닌 듯, 랭거도 고요하게 숲을 응시하고 있네요.
랭거 켈론:있지, 다른 사람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본 적 있어?
엘타 베인:난 해본 적 없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고.
랭거 켈론: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건 앞으로 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피식 웃고) 엘타는 되도록 안 했으면 좋겠는데.
엘타 베인:그건 모르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입꼬리를 올리며) 누가 할 말인데. 넌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은 할 생각도 말라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최대한 오래.
랭거 켈론:... 은근 얄밉단 말이야? (웃는 얼굴로 숨 내뱉다가 동공 살짝 커져) ... 날 원망하지 않아? 베인가를 그렇게 만들어 놨는데? 도구는 언젠가 버려지기 마련이니까. 쓸모를 다하면 잊혀지잖아? 당장 죽이고 싶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살라고 그러네. 원수한테. 바보같긴...
엘타 베인:(푸스스 웃고는) 너야말로 바보 아니야? 적어도 이대로라면 용서할 생각이 없다고 했잖아. 넌 이미 나보다 충분히 고통 받고 있었던 것 같으니 다는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용서해줄게.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가문을 지키려 나름대로 노력도 했던 것 같고. 네 말대로 네가 왜 이래야만 했는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아, 난 한 가지 도구가 손에 익으면 계속 쓰는 사람이란 것도 알아둬.
랭거 켈론:(입 뻥긋 거리다가 할 말 잃었는지 등 기대서 축 쳐지고) 나야 뭐... 처음부터 이랬는데. 엘타는 우리 가문만 없었어도 나쁘지 않게 지냈을 걸? 그래도 어느정도 용서해 준다니까 다행인가? (눈 끔뻑거리다가 아이처럼 웃어) ...그래~ 나 노력 많이 했다~ (슬 상체 세우고 창문쪽에 턱 괴더니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중얼거려) ... 그래, 얼른 손에 익었으면 좋겠다.
잠깐 대화하다 보면 멀리서 백작가의 저택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차는 곧이어 저택 뒤로 돌아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멈춰 섭니다.
랭거가 먼저 내려 한 손을 잡으라는 듯 뻗어줍니다.
엘타 베인:에스코트 해주는 거냐? (가볍게 웃다가 손을 잡고 내려간다) 참 웃기네.
랭거 켈론:뭐~ 이렇게 하라고 배웠으니까? (방긋 웃고)
당신도 마차에서 내리면 둘은 저택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마침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랭거가 어쩐지 걱정하는 눈으로 당신을 흘긋거립니다.
랭거 켈론:준비됐으면 안으로 들어갈까?
엘타 베인:(짧게 심호흡을 하다가) 그래, 이제 들어가자.(안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은 빛이 들지 않는 저택의 홀에 들어섭니다.
먹구름 탓에 흐리지만 아직 낮이라 촛불이 필요할 정도는 아닙니다.
베인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가구와 장식들은 그대로 남아 있네요.
사람의 온기가 없는 것만 빼면 살해 현장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걸요.
제 가문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엘타 베인.
엘타 베인:
랭거 켈론:... 이런 식으로 오랜만에 방문하고 싶진 않았는데~...
랭거는 머뭇거리더니 필요한 건 백작 내외의 침실에 있을 것 같다며 먼저 2층 계단을 오릅니다.
그를 뒤따르면서,
엘타 베인:
바닥에서 작게 피어오르는 까만 연기를 발견합니다.
공작 저에서 마주한 악마 주변에 이런 것들이 일렁거렸지요.
존재를 알아채자 집안 곳곳에 검은 연기가 독처럼 퍼져 있는 게 보입니다.
벌써 거세진 비바람이 창문을 치고 갑니다.
언뜻 내려다본 정원의 나무들이 가차 없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앞장서서 복도를 걷던 랭거가 조용히 묻습니다.
랭거 켈론:이 세상에 비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엘타 베인:있을리가. 사람은 작든 크든 비밀을 갖고 살아가는 거야. 그 자신에게도 숨기는 게 사람인데.
랭거는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어집니다.
대화가 멎자,
유령 저택이 되어버린 곳이어서일까요.
스산한 바람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엘타 베인:
그 순간 아까 본 검은 안개가 당신의 발목을 타고 올라옵니다.
그러더니 무릎을,
허리를,
마지막으로 목을 에워쌉니다.
랭거 켈론:....!
엘타 베인:허...
그 모습을 본 랭거가 다급히 당신의 손을 잡고 복도를 달립니다.
그러자 까만 연기는 다시 공기 중으로 흩어지지만,
그는 여전히 멈추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정신없이 내달려 다다른 곳은 애초에 목적지였던 방입니다.
랭거가 재빨리 문을 닫고 그대로 주저앉아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랭거 켈론:괜찮아? 뭔가 보거나 듣지는 않았어?
엘타 베인:검은 안개. ...그것 말곤 없어.
그는 어두운 얼굴로 침실을 뒤적거리기 시작합니다.
랭거 켈론:...
엘타 베인:그래, 아무래도 저쪽에서 눈치를 챈 것 같다. (침대를 살펴본다)
침대 구석구석에 혈흔이 묻어 있습니다.
아직 피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역한 기분이 듭니다.
잔뜩 어지럽혀져 있는 침대 아래에 확대경이 떨어져 있습니다.
이 방에 확대경으로 살펴볼 만한 게 있었을까요?
엘타 베인:...(확대경을 주워서 살핀다)
평범한 확대경입니다. 이걸로 뭔가를 크게 볼 수 있겠네요.
엘타 베인:이걸로 무엇을 보셨던 거지. (책상을 살펴본다)
책상 위에 있던 잡다한 것들은 누가 가져갔는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책상 서랍도 텅 비어 있습니다.
단지 랭거가 방에서 발견하고 올려둔 촛불만이 주위를 밝힐 뿐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눈에 띄는 게 없는데요…
엘타 베인:이걸 여기에 쓰는 건 아닐테고. (확대경을 들여다본다)
나무 무늬뿐인 줄만 알았던 책상 위에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확대경이 없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겠습니다.
엘타 베인:아래? (책상 밑을 봐본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정사각형의 여닫이문이 있습니다.
바닥재와 완벽히 똑같은 무늬에,
틈도 없이 딱 들어맞아서 모르는 사람은 지나칠 만합니다.
엘타 베인:허, 여기에 이런 곳이. (여닫이문을 열어본다)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이곳을 살필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니 확인할 수 있는 건 지금 전부 확인하는게 어떨까요?
엘타 베인:다른 곳에도 뭐가 있으려나. (서랍장을 살펴본다)
서랍장 안에는 가벼운 의복들이 곱게 접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그대로 남겨둔 모양입니다.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 안쪽에 뭔가 숨겨두기도 좋겠죠.
엘타 베인:(의복들 사이를 뒤져본다)
가지런히 접어 둔 옷 틈에서 메모 하나를 찾습니다.
...
방을 다 둘러보았다고 생각할 때쯤에 랭거가 다가옵니다.
랭거 켈론:어때? 뭐 좀 찾은 거 있어? 나는 꽝인 것 같은데.
엘타 베인:바닥에 숨겨진 문을 하나 찾았어. 그리고 이 메모도. (메모 팔랑인다)
랭거 켈론:(메모 힐끔 봤다가 바닥에 문 쪽으로 시선 돌려) 들어가면 되겠네.
엘타 베인:그래야지. 대체 이 아래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아야겠어. (문을 연다)
바닥과 꼭 맞는 비밀의 문을 열면,
한 번에 한 명만 들어갈 만큼 좁고 어두운 계단 통로가 나옵니다.
책상에 올려둔 촛불을 다시 챙긴 랭거가 그 안으로 먼저 발을 들이며 뒤돌아봅니다.
랭거 켈론:어서 들어와. 이 앞에 당신한테 해가 되는 건 없을 테니까.
엘타 베인:너도 조심히 가. 혹시 모르니까. (뒤따라 들어간다)
그를 뒤따라 깊은 통로를 한참 내려가면 철문 하나가 나옵니다.
달려 있는 다이얼 자물쇠의 숫자를 알맞게 세 번 맞추면 열리는 형식입니다.
엘타 베인:아까 그 메모에 있던 게 번호인가? (70 50 20)으로 맞춰본다.
다이얼을 돌리자 자물쇠가 덜컥거리며 문이 열립니다.
먼저 열린 문틈으로 들어간 랭거가 묘하게 당신을 신경 쓰는 눈치입니다.
당신도 방에 들어가면 곧바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마주합니다.
벽과 바닥에는 온통 별을 닮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꼭 깨진 마름모 같은 눈 그림도 함께입니다.
또한 방구석에는 벽과 바닥의 문양과 흡사한 그림이 새겨진 녹색 원형 돌들이 일정한 배열로 늘어져 있습니다.
돌에 박힌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응시하는 것만 같은 게,
당신은 본능적으로 저 돌들이 이 세상의 물질이 아님을 알아차립니다.
랭거 켈론:위험하니까 너무 가까이 가진 마. 그보다... 저기에 뭐가 있어.
랭거가 반대쪽에 놓여 있는 참나무 선반을 가리킵니다.
엘타 베인:뭐가, 있다고? (참나무 선반을 살펴본다)
그 위에는 오래된 노트 한 권과
펼쳐둔 편지 두 장이 있습니다.
엘타 베인:(노트 한 권을 펼쳐본다)
노트에 글이 적힌 페이지는 단 한 장뿐인데,
잉크가 군데군데 번져 있습니다.
명백히 당신의 아버지인 백작의 필체입니다.
이 집안에도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요.
결국 지금까지 당신만 아무것도 몰랐던 겁니다.
랭거 켈론:... 가족이라고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니까.
랭거가 위로하려는 듯 중얼거립니다.
엘타 베인:하, 나만 몰랐던 거였네.이런 배려 같은 거, 바라지도 않았다고요, 아버지. (노트를 내려놓고 첫 번째 편지를 살펴본다)
엘타 베인:켈론... 이때부터 노렸던 건가. (두 번째 편지를 살펴본다)
...
선반을 살핀 직후에 당신은 방안에서 부정적인 기운을 느낍니다.
엘타 베인:
근방을 살피면 구석에서 꿈틀거리던 검은 덩어리를 발견합니다.
물컹거리는 질감의 그것은 까만 액체를 흘리며 징그럽게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엘타 베인:
그때 랭거가 가방에서 빈 자루를 꺼내더니 괴상한 생명체를 집어 담습니다.
볼록해진 자루가 그의 손아귀에서 꿈틀거립니다.
랭거 켈론:이건 내 양부나 타락한 마법사들이 추적할 때 사용하는 건데...
엘타 베인:그럼 아직 들키진 않은 거지? 빨리 해야 겠네.
랭거 켈론:아직 들키지는 않았을 거야.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지.
움직이는 자루를 도로 가방에 집어넣은 랭거는 이만 침실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엘타 베인:(고개 한 번 끄덕이고 돌아간다)
둘은 방을 벗어나 다시 계단을 오릅니다.
...
되돌아온 부모님의 침실에서는 아까보다도 짙은 음산함이 묻어납니다.
당신이 살던 곳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영혼이 떠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장소가 되어서일까요.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열망을 느낍니다.
복도로 나가기 전에 랭거가 문손잡이를 쥐고서 당신을 봅니다.
랭거 켈론:만약,
엘타 베인:이상한 소리 하지마. 도구를 버리고 떠나는 장인 본 적 있어?
랭거 켈론:그 도구가 제 발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잖아.
엘타 베인:도구는 발 없어. 하지만 한 번만 들어줄게. 아무일도 없으면 되는 거니까.
랭거 켈론:(싱긋 웃어) 그래, 착하다.
대화가 끝나면 둘은 방을 나섭니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폭우로 인해 흐릿해진 바깥 풍경이 보입니다.
세찬 비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창문을 때려서 둘의 발걸음 소리는 묻히고 맙니다.
초가을치고는 지독히도 나쁜 날씨입니다.
얼핏 본 복도의 괘종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랭거 켈론:돌아가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네~
엘타 베인:그냥 가다간 쫄딱 젖겠는데.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함께 얼마 걷지도 않았을 즈음에 바깥에서 흐느끼는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옵니다.
당신이 듣기로는 분명히 누군가의 음성이었습니다.
랭거 켈론:... ...
잠시 주춤하던 랭거가 다시 당신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랭거 켈론:조심해... 조심해, 엘타.
마치 누군가를 잃을까 봐 겁을 내는 것 같았습니다.
불현듯 유리창 몇 개가 깨지며 그 틈으로 거센 비바람이 들어옵니다.
그러자 그는 멈추지 않고 더욱 조급하게 계단을 내달립니다.
네, 랭거는 명백히 무언가로부터 당신을 데리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유달리 멀게 느껴지던 1층에 발을 디뎠을 때입니다.
엘타 베인:
어디선가 불규칙한 형태의 그림자가 나타나 당신을 덮칩니다.
엘타 베인:윽...
사실은 직전에 랭거가 당신을 밀쳤으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거대한 그림자는 쓰러진 당신에게 달라붙어 조금씩 육체를 좀먹어 갑니다.
엘타 베인:
그때, 랭거가 무슨 수를 썼는지 그림자는 돌연 그에게로 옮겨붙습니다.
랭거는 공작 저에서의 일로 아직 몸도 성치 않으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랭거 켈론:어서 밖으로 나가! 그대로 숲으로 난 길로 쭉 달려!
엘타 베인:...안 오면 죽여버릴 테니까! 꼭, 만나러 와..! (밖으로 달려나간다)
당신은 혼자 저택을 나와 이어진 길을 따라 달립니다.
차가운 바람과 무거운 빗방울 속에서,
두 발로 힘껏 뛰어도 숲은 가까워질 듯하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끝이 있다고 믿고 숲으로 향할 수밖에 없겠죠.
숨이 끝까지 차올랐으나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요.
시야에 나무가 하나하나 명확하게 들어올 즈음엔 하늘이 눈에 띄게 잠잠해져 있습니다.
여전히 부슬비는 내리지만 바람은 멎었네요.
자신의 의지로 찾은 숲은 유난히 그리움에 사무쳤습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은 뭘까요.
아득히 멀어진 저택 쪽에서 랭거는 아직 올 기미가 없습니다.
그를 믿고 이곳에 먼저 도착한 만큼 주변을 둘러보며 기다릴까요.
엘타 베인:하아, 여긴 뭐지. (나무를 살펴본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싱그러운 빛이 없는 나무들입니다.
그런 관목들 사이에서 탐사자는 땅에 박힌 바위를 발견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면을 긁어 글을 새겨두었습니다.
이어서 내려다본 바위 밑동의 흙은 주변과는 달리 유독 평평합니다.
누가 인위적으로 덮어둔 모양새입니다.
엘타 베인:이런 곳에 올 자가 있던가. (흙을 파본다)
당신이 흙을 파내면 그 아래에 묻혀 있던 작은 상자를 발견합니다.
엘타 베인:왠 상자가. (상자를 꺼내 열어본다)
상자를 열면 안에 녹슨 열쇠와
쪽지가 들어 있습니다.
엘타 베인:(녹슨 열쇠를 꺼내 살핀다)
어디에 쓰는 열쇠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엘타 베인:이런 열쇠가 왜 있는 거지. (쪽지를 살펴본다)
꼬깃꼬깃 접어둔 쪽지에는 한 문장만이 적혀 있습니다.
엘타 베인:알 수 없는 소리만 하네. (잔디를 살펴본다)
비를 머금은 잔디 바닥에 작은 꽃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습니다.
숲을 지날 때마다 누가 당신을 부르는 것만 같다고 했었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주위의 나뭇잎과 풀줄기 틈새에서 흐릿한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볼까요?
엘타 베인:(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매번 지나칠 뿐이었던 숲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면 음성은 좀 더 분명해지지만 여전히 희미합니다.
...
숲을 돌아보자 기억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떠오릅니다.
부슬비가 내리던 숲,
나무 아래의 두 사람,
브로치를 건네던 손.
여전히 단편적인 기억뿐이지만 분명합니다.
3년 전 당신은 어떤 이와 함께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었지요.
걱정하지 마.
저택으로 돌아가면 전부 없던 일이 되어 버릴 테니까.
평생 오늘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해.
대신 이 숲과 내가 기억하고 있을게.
그리고 하나는 알아줘.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놓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
그런 몇 마디 말과 함께 그가 준 것이 브로치였습니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낯설지 않았고,
그리웠으며,
몇 번이나 꿈에 나왔던 것.
집안이 기울어 답답한 속내를 어찌할 줄 몰랐을 때,
랭거는 당신을 이곳에 데려왔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은 곁에 있을 거라며,
이 브로치를…
...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는 비가 완전히 그칩니다.
흐렸던 하늘도 아까보다는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축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랭거 켈론:... 많이 기다렸어? 곧 만나러 온다고 했었잖아.
눈이 마주친 랭거는 웃어 주지만,
온몸을 미세하게 떨고 얼굴에 핏기가 없습니다.
겨우 한 발자국씩 내딛는 두 다리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습니다.
그가 가까운 나무에 천천히 기대어 앉습니다.
랭거 켈론:... 네가 영원히 이 숲을 찾을 일이 없길 바랐어.
엘타 베인:(목 부근의 브로치를 가만히 만진다) 사람이 어떻게 평생 행복한 일만 있겠어. 차라리, 다시 이 숲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너를 더 미워하지 않아도 돼서. 그러니까, 놓지마. 절대로 놓치지 마. 약속, 했으니까.
랭거가 당신의 브로치에 손을 가져다 댑니다.
랭거 켈론:엘타 말이 맞아. 어떻게 행복한 일만 있겠어. (...) 난 분명 결심했었거든. 3년 전 그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만은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 그런데 당신이 여전히 이 브로치를 가지고 있던 거야. 그래서 순간 망설여졌어. 좀 더 엘타 주위를 맴돌고 싶어서, 이대로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서. 더는 그런 생각이 안 들게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두기로 했었는데...
랭거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어느 나무에 다가갑니다.
랭거 켈론:이제 확실히 알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그가 나무 구멍 안에서 녹슨 상자를 꺼내 당신에게 내밉니다.
아까 찾은 녹슨 열쇠로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타 베인:그러면 뭐든 상관없어. 네가 최선을 다했다면 된 거야. (천천히 녹슨 상자를 받아 녹슨 열쇠로 연다)
열쇠로 상자를 열면,
내부에는 돌돌 말아 각각 끈으로 묶어 놓은 양피지 두 장이 있습니다
랭거 켈론:아무거나 먼저 읽어 봐.
엘타 베인:(양피지 한 장을 꺼내 끈을 풀고 읽어본다)
당신이 양피지를 펼치면 이해하기 힘든 글이 세로로 길게 적혀 있습니다.
당신이 끝까지 읽기를 기다리던 랭거는 조심스럽게 입을 엽니다.
랭거 켈론:3년 전 아버지, 그러니까... 내 양부가 줄곧 찾고 있던 게 당신 가문에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찾고 있던 건 공작가가 섬기는 신을 이 세상으로 부를 수 있는 통로고.우리가 아까 갔던 곳 있지? 당신이 발견한 그 문. 백자가는 그 통로에 어떤 존재도 드나들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 공작가와 타락한 마법사들에게는 당신 집안이 방해였어. 그래서 백작가를 서서히 몰락시키려고 했던 거지. 최대한 자신들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엘타 베인:그 문을 보고 나서 대충 예상하긴 했어. 아버지는 켈론가가 자신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러셨겠지. 그 반대였던 것도 알지 못하고. (숨을 길게 내쉬며) 우리 가문이 기울었을때, 그걸 막은 게 너 맞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걸보니 확실해졌네. 대가는, 아직 치뤄지지 않은 거야?
랭거 켈론:똑똑한데? (하하 웃고) 아마 그랬을 거야. 우리 집안이 부유하긴 했으니까 (...) 맞아,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그런 일에 엮여서 희생되는 게 싫었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잖아. 안 그래? 그래서 이 양피지에 적힌 주문을 사용한 거고... 우선 당신 집안의 누명과 실패를 없던 일로 돌리고, 점차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도록. 응, 대가는 아직이야. 그래서 늘 불안했거든.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우리 둘 중 누구 하나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되면 끝까지 엘타를 돕겠다던 약속도 못 지키잖아? 그래도 이젠 좀 마음이 놓이네~ 드디어 대가를 치르고,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엘타 베인:(잠시 침묵하다가) 그래도 난 이해가 안 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대가 억울할 거라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희생한다는게. 나였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 아니면, 첫눈에 반했다는 뭐 그런건가? (작게 웃고는 네 눈을 빤히 바라본다) 그 대가가 궁금하네. 네가 겪을 가장 원치 않는 이별이란게, 대체 뭔데?
랭거는 피식 웃더니 당신과 시선을 마주합니다.
뒤이어 랭거가 다른 양피지도 펼쳐 보여줍니다.
이번 것도 다 읽으면 그가 가방을 당신에게 떠넘깁니다.
안에는 공작가의 책과 백작 저에서 발견한 괴이한 생명체를 담은 자루가 들어 있습니다.
랭거 켈론:글쎄, 첫눈에 반한거려나? 당신 마음대로 생각해. 엘타, 대가가 궁금해? (양피지로 시선 뒀다가 실 웃어) 내가 반드시 가장 원치 낳은 이별을 겪게 될 거라 했지. 난 지금이 그 순간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나는 이대로 오래 살 수도 없어. 아까 본 그림자들의 저주가 정신과 생명을 갉아먹고 있거든. 천천히 고통받으면서 죽어갈 바에는 차라리 당신을 위해 지금 죽고 싶어.
엘타 베인:(같이 양피지로 시선을 옮긴다) 지금이라. 내가 전에 말했지, 네가 나보다 괴로워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렇게되면 가장 괴로운 사람은 내가 되는 거잖아. 있지도 않는 사람이 된 너를 영원히 기억하는 나만이. (두 손을 뻗어 네 얼굴을 잡고 들어올린다) 그러니까, 지금 네 모든 걸 나한테 줘. 내가 너를 그릴 수 있는, 너를 생각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을 나에게 줘. 그럴 수 있지?
랭거 켈론:엘타, 가장 괴로운 사람이 당신이라니. 전혀 아닐 걸? (...) 난 우리의 혼약이 정해졌을 때, 그러니까... 정확히 90일 전으로 당신을 보낼 거야. 그렇게 되면 베인가도 멀쩡할테고 가족들도 다 살아있을 텐데? 그냥 켈론가만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돼. 예전처럼 평화롭게 살아가는 거야. 당신이 어떻게 한다고 한들 내가 살 방법은 없어. 차라리 가족들을 살리고, 켈론이라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려. (...) 과거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내가 자루에 담아둔 것을 책 위에 떨어뜨려. 그럼 책과 자루에 담긴 것 둘 다 소멸하게 될 거야. 어렵지 않지?
엘타 베인:(미간을 찌푸리며 허리를 살짝 굽힌다) 켈론은 잊어버린다고 쳐. 하지만 너는? 랭거는 어떻게 잊지? 난 나를 잘 알아. 분명 너를 잊지 못 할 거야. 그래서 그리워하고, 또 괴로워하겠지. 사람은 아주 작은 빈 자리로도 허전함을 느끼는데, 네가 사라지는 거잖아. (곧 살풋 웃고는 네 왼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에 짧게 입을 맞춘다) 이 반지는 영원히 빼지 않을게. 켈론가도, 확실히 무너뜨릴 거고. 책도, 이 자루도 다 없앨게. 거기에 넌 없겠지만 난 너를 그리며 살 거야. 네가 다시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이러면 네가 안심할 수 있을까.
랭거 켈론:(살짝 웃어보이고) 랭거도 켈론이야 엘타 베인. 나를 원망하지 않았어? 애증이라도 하는 건가... (당신 머리 살짝 넘기고 더 활짝 웃어) 결혼은 해야지, 엘타. 켈론가는 내가 말해준 방식대로 하면 확실하게 무너질 거야. 공작은 자신의 충실한 양자를 믿고 오만하게 굴다가, 마법사들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잃은 죄로 죽음을 맞이하겠지. 마법사들도 적어도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잠잠할 거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낼 방법도 없고, 세상에 하나뿐이었던 책을 되살리는 일에만 상상도 못 할 만큼 오래 매달려야 할 테니까. (...) 응, 안심할 수 있겠다.
3년 전에도,
지금도 당신을 위해 온 삶을 내던질 각오를 한 그입니다.
오직 랭거의 죽음만이 당신의 모든 것을 되찾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너무나 증오하거나 사랑한다면,
함께 어딘가로 달아나 바로 곁에서 그의 생명이 바스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길어도 몇 개월이면 그는 숨을 거둘 것입니다.
고작 얼마 남지 않은 파멸의 길을 위해
...
다른 전부를 저버리는 게 옳은 일일까요.
엘타 베인:애증이라, 그게 맞겠네. 여전히 네가 밉지만, 한 때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계속 사랑하고 싶은 사람으로서.네 마지막 바람만은 들어줄게. (가만히 네 손길을 느끼며) 마음같아서는 절대로 널 놓고 싶지 않아도, 넌 절대 나한테 잡히지 않겠지. 하지만 널 기억하는 게 나밖에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가진 게 아닐까? 결혼같은 거 하지 않아도 가문은 이을 수 있어. 입양이라도 하지, 뭐. (잠시 멈춰있다가 천천히 손을 네 목 위에 둔다) 네 마지막을 술식 같은 거에 빼앗겨서 아쉽네. 적어도 네 마지막은 내가 갖고 싶었는데.
랭거 켈론: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운데? (...) 그러네, 당신만이 날 기억해 주겠구나. 이왕이면 핏줄인 게 좋잖아. 그것도 그렇고... 외로운 거 싫어하지 않아? 내 마지막을 술식에 뺏겼다니 이해가 잘 안되는데? 당신 때문에 술식을 하는 거고, 당신을 위해서 내가 죽는 거니까. 마지막도 엘타 당신이 가져가는 거야.
당신은 그의 제안대로 하기로 합니다.
모든 걸 잃은 당신에게 랭거는 자신의 전부를 걸었습니다.
당신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평탄하게 살아갔겠죠.
이 선택이 자신의 삶에 치명적인 독이라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한 것입니다.
랭거 켈론:잘 생각했어. 당신도 이게 우리의 최선이라는 걸 알지?
엘타 베인:그래, 계속 믿고 있어. 나중에 내가 죽을 때는 네가 반겨줘야 한다?
랭거 켈론:되도록 늦게 와줬으면 좋겠네...! 반겨줘 보도록 노력할게.
적어도 겉으로 본 랭거는 무척이나 결연해서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마주한 그의 눈가가 살짝 떨립니다.
랭거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뭔가를 읊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책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맨 앞으로 타르르 넘기듯,
당신 주변 풍경이 덧없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끝없이 달려온 숲,
검은 그림자,
백작가의 비밀,
덜컹거리던 마차 안,
깊은 잠에 들었던 랭거,
공작 저에서 맞은 아침,
차가웠던 지하,
독이 든 와인.
모든 것이 이 영혼에 각인되어 평생을 함께할 것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되감기는 기억 속에서 당신 앞에 있던 랭거가 점차 희미해집니다.
옅어지고,
흩어졌다가,
사라집니다.
이별이란 이렇게나 덧없고 허무한 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기억의 전환이 조금씩 느려지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멈춥니다.
익숙한 가구,
익숙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
당신은 자신의 방에 서 있습니다.
탁자 위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린 달력이 보입니다.
6월 14일.
정확히 90일 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문득 마주한 거울 속 자신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아 축축하게 젖은 옷,
랭거가 준 브로치,
그가 건넨 가방과 안에 든 것들 전부.
단 하나,
그가 곁에 없다는 걸 빼고는요.
엘타 베인:...진짜 돌아왔네. 진짜 돌아왔어. (두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다가 그대로 얼굴을 덮는다) 너만 빼고.
그러나 당신만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는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차례겠죠.
...
랭거 로스트, 엘타 베인 생환
이성 1d6 회복
당신은 과거로 돌아옵니다.
엘타 베인:정원에는, 물망초를 심어볼까.
ep.1
결혼식 전날결혼식이 당장 내일인데 오늘 저녁 식사에도 초대하는 걸 보면, 네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야.





기준치: | 80/40/16 |
굴림: | 5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하지만 왜 이래야만 했는지 알게될 거야.
이런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ep.2
결혼 예정일 밤



교회 제단 앞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비록 정략결혼일지라도 영원할 사랑을 맹세하면서... ...
그거 알아?
난 너랑 결혼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았어~


기준치: | 85/42/17 |
굴림: | 5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18XX년 9월 11일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 날… 베인 일가 참변

기준치: | 85/42/17 |
굴림: | 4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6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들키지 않게 조심히 따라와~

ep.3
랭거의 방
기준치: | 80/40/16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그렇다고 내가 결백하다고는 안 해. 나 역시 그런 가족을 막지 못한 죄가 있으니까.

차라리 같이 죽게 나두지 그랬어. 그게 더 편했을 거 아냐.

당신을 도와줄게.
복수든 도망이든 뭐든 네가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
... 내게 하루만 시간을 줘.









기준치: | 75/37/15 |
굴림: | 6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75/37/15 |
굴림: | 76 |
판정결과: | 실패 |

(책을 다시 꽂고 벽난로를 살핀다)






어쨌든! 내일이면 이 집안 모두가 그 쪽이 지하에서 사라진 걸 알게 될 거야.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오늘 밤은 여기서 지내.





사용인들은 셀 수 없이 많으니까 당신만 잘해준다면 들킬 위험은 없어.








서재에 이 가문의 몰락과 당신의 복수를 위한 수단이 있어. 그러니 꼭 당신이 가서 찾아와줘야 해.
... 겸사겸사 아래층이 어떤 상황인지도 보고 말이야~


...
그러니까... 때가 되면 내가 당신을 찾으러 갈게.



기준치: | 75/37/15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지금 주인어른의 명령으로 밖으로 나간 사람들도 있으니 괜찮겠지.
어휴, 도련님은 안 그래도 3년 전부터 주인님의 눈 밖에 나신 분이 어쩌자는 건지.
이제 필수적인 것 외에는 도련님께 관여하지 말라 하시더군.


(식당을 둘러본다)



기준치: | 84/42/16 |
굴림: | 8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창고로 걸어간다)


기준치: | 65/32/13 |
굴림: | 3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니까...
이곳에 중요한 비밀이 있다는 거지.

기준치: | 75/37/15 |
굴림: | 4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지금부터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반응을 보여선 안 돼.
명심해.




네가 허튼짓을 하면 하인들이 알려주겠지. 네 편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서 하루 일찍 와봤다만.
네 약혼자가 탈출했다지.
어젯밤부터 넌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 착각인가?

역시 전부 한 번에 죽였어야 했나.


어떻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3년 전에도 네 녀석 때문에 모든 게 틀어졌다.
네가 그 빌어먹을 집안을 막아주지만 않았어도!
대답해라.
왜 나를 배신하고 그들을 돕는 건지!

기준치: | 84/42/16 |
굴림: | 9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비밀스럽고 부패한 일들을 맡기고,
가문의 지위와 명예,
그리고 모자랄 것 없는 삶을 주었지.
원래 하던 대로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면 될 것을.
이제라도 그러면 깨끗한 사람이 될 것 같으냐.

어떻게든 엘타 베인을 찾아내고, 백작 저로 가서 찾아야 할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
마차는 바로 준비해주마.
그러나 다른 도움은 기대 마라.
알아서 해결해.
이번에도 잘못을 수습하지 못하면 더는 널 이용할 가치도,



아니, 당신한텐 딱히 상관없으려나.



부탁할게.


기준치: | 75/37/15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고작 책 한 권으로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아하겠지.
그만큼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될 것들은 전부 담은 책이거든.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타락한 마법사들과 내통하고 있어.
그런 게 실제할 거라고 생각한 적 있어?
나는 그런 집안의 도구로 살아왔어.
하지만 나는 결국 현실에 순응했고, 이 가문에 기대어 살아왔으니 결코 무고하지 않아.
그런데 너는...

그래서, 가만히 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아서...
독을 먹인 건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어...!
그러지 않았다면 너마저...

그만해. 다 알았으니까.

그걸 원해서 당신을 돕겠다는 것도 아니야.
나는 그저...
...
왜일까...

...미안.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옆에 있어 줄 수 있어?
계획에 차질은 없을 테니 걱정 마.


...있잖아.
그간 차갑게 대해서 미안했어.


어차피 가야만 하는 곳이었는데, 명분이 생겼으니 차라리 잘됐어.
우리가 찾은 책은 쉽게 없앨 수 없거든. 유일한 해답은 그곳에 있을 거야.



내 눈에 보이면 계속 망설여질 것 같았거든.
... 그런데 이제는 괜찮아.



... 갈까? 이미 밖에서 마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ep.5
백작 저와 숲
...난 해본 것 같아. 어쩌면 한 번 더 할지도 모르고.











기준치: | 83/41/16 |
굴림: | 7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0/40/16 |
굴림: | 7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5/42/17 |
굴림: | 4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시간이 없어. 내 반대편 좀 살펴볼래? 눈에 띄는 거라면 뭐든 봐봐.






















기준치: | 80/40/16 |
굴림: | 7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기준치: | 82/41/16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혹시나 했지만 정말 여기서 찾게 될 줄은 몰랐네.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어.
이 방에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서 다행이야. 하마터먼 이곳의 존재가 그대로 들통날 뻔했네.




정말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날 두고 먼저 저택을 떠나.
난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보고 익혀왔으니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알았지?


먼저 가지 않으면 당신은 안 돼.
한 번만 내 말 좀 들어줘, 응?
...
물론 어디까지나 만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아까 지나온 숲에서 다시 만나자.



그래도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기준치: | 69/34/13 |
굴림: | 78 |
판정결과: | 실패 |


기준치: | 82/41/16 |
굴림: | 7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거기서 기다려 줘. 곧 만나러 갈 테니까!










그렇다는 건 당신한테 다시 그때만큼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그냥 다 잊고,
엘타, 네가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어.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됐다는 거지.















... 당신은 그렇게 돌아간 과거에서부터 다시 살아가면 돼.
당신의 가족과 가문, 모두 온전한 시점에서부터.



... 이 다음부터는 혼자서 잘해 줄거라 믿어.



랭거 켈론:(...)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말, 진짜... 많이 사랑했어. 나를 잊지 말아줘. (당신의 약지 손가락에 있는 반지에 입 맞추고는 슬픈 얼굴해 작게 중얼거려) ... 진짜, 결혼, 하고 싶었는데....

(책을 바닥에 두고 그 위에 자루에 담긴 것을 떨어뜨린다) 네가 안심할 수 있게 해줄게. 거기서는 그나마 덜 괴로울까.
Ending.1
네가 독임을 알면서도 단번에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