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29
과거에는 화려한 축제가 벌어졌을 이곳은 퀴퀴한 냄새만을 풍기는 시커먼 마을로 돌변한 지가 오래입니다.
성당에는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 무너져가는 세상은 당장 내일 멸망할까요, 오늘 멸망할까요.
당신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근래에는 묘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살려달라 곡소리를 내는 꿈입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무저갱에 떨어질 것만 같은 모습.
사람들은 점차 시체처럼 썩어들어가는, 요컨대 악몽이 지속적으로 당신의 밤을 두드린지 벌써 몇 달 째입니다.
성당의 신부님이 전염병으로 죽고 그 빈 자리를 대신하러 온 이였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기묘한 꺼림칙함을 느꼈었는데,
어째서인가 두 사람의 관계와는 별개의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요라도 당하는 것마냥 랭거를 향한 거부감은 욕지기처럼 간혹 치밀어오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악몽과도, 랭거에게 든 기묘한 거부감과도 별개로 당신은 오늘도 성당으로 향합니다.
말세에 필멸자는 대체로 절대적인 존재를 찾기 마련입니다.
다만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자의 인영이 보입니다.
사제복을 입고 있는 랭거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립니다.
엘타 베인:모두가 하고 있으니까. 너는, 오늘도 있네.
랭거:신부가 성당이 아니면 어디 있겠어. (제 이마 꾹 누르더니 웃어) 성실하네.
엘타 베인:그런가. (옅게 미소지으며) 이곳이 아니면 갈 곳도 없는데, 뭐.
랭거:아... 요즘 전염병이 문제였나? 얼른 괜찮아지면 좋을텐데... 더 자주 와줘도 좋아. 점점 오는 사람들의 수가 줄고 있거든.
엘타 베인: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네. 사람들이 하는 기도가 위에 닿았으면 이 전염병도 빨리 사그러들겠지. 이미 충분히 자주 오는 것 같은데, 노력은 해볼게.
랭거:모두가 노력하고 있으니 금방 나아지겠지. 신이 기도를 들어주시는 날까지 당신도 조심해. 전염병이 사람을 골라서 걸리는 게 아니니까. (마른세수 하고) 사람을 많이 못 봐서 작은 부탁 좀 했어. 그래도 너무 돌아다니지는 말고.
엘타 베인:그래, 나까지 걸린다면 너도 심심할 테니. 말을 섞을 수 있는 사람 하나가 귀한 세상이기도 하고. (너를 슬쩍 봤다가) 어차피 돌아다닐 곳도 없는데, 얼굴 좀 더 자주 비쳐야겠네.
랭거:...응. 그냥 조심하라고 전해주고 싶었어. (잠깐 멍 때리다 눈 마주치고 슬 미소 지어) 다 무너졌으니까 그럴만도. 자주 보면 나야 좋지?
랭거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엘타 베인:좋다면 다행이고. (휴게실 쪽을 보며) 피곤한 것 같은데, 차라도 한 잔 마실래?
랭거:피곤한 건가...? 같이 마셔준다면야 사양하지는 않을게. (천천히 일어나더니 발걸음을 옮겨) 휴게실은 이쪽이야.
엘타 베인:너는 피곤한 것도 모르냐. (네 뒤를 따라간다)
휴게실 안쪽은 피로를 풀 수 있는 찻잎과 간식이 놓여 있습니다.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86 |
판정결과: |
실패 |
그냥 차를 타고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네요.
엘타 베인:(안쪽에서 찻잎을 꺼내 달인다. 간식에 눈길을 주며) 차만 마실 거야?
랭거:아, 내가... 해주고 싶은데 차를 잘 못 우려서 미안하네... (어정쩡하게 서서 당신 주변 서성 거리다가 푸핫 웃고 간식을 챙겨와) 먹고싶어? 마음껏 먹고 가. 먹을 사람이 없어서 남네...
엘타 베인:네 요리 실력은 잘 아니까. (다 달인 찻잔을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다른 건 더 없나.
랭거:먹을수만 있으면 됐지... 아쉽지만 간식과 차 밖에 없어. 원하는 거라도 있어?
엘타 베인:먹을수도 없는 것 같았는데... 아니, 침대같은 거라도 있으면 자라고 하려했지.
랭거:먹을수는 있...을 걸? 정 먹을 게 없다면. 침대는 없고 의자는 있으니 여기서라도 쉬어야지. (의자에 축 늘어져 두 눈 꼭 감고) 당신도 앉는 건 어때?
엘타 베인:차라리 내가 차려주고 말지, 그건 먹을 게 아니야. (의자에 앉아 찻잔을 건넨다) 너도 참, 사람이 제대로 쉬지도 않고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랭거:와... 상처. 먹을수는 있다니까. 알았어 깔끔하게 포기. (찻잔 받고 몇 모금 넘기더니 전보다 편안한 얼굴하고) 상황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는것도 기도밖에 없는걸?
엘타 베인:
은밀행동
기준치: |
60/30/12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4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를 위한 차를 끓여 전달하면 랭거는 감사를 표합니다.
역병의 치료법이 도통 나오지 않는다는 한탄 섞인 푸념도 중얼거립니다.
랭거:(차 홀짝이다가 당신 손에 쥐어진 종이를 발견하고 낚아채간다.) ...서재에 있는 책에서 떨어져나온 종이야. 이런 거 함부로 줍고 다니지 마.
엘타 베인:(빈 손 보고) 무슨 책이길래 이런 내용이 있냐. 그냥 떨어져있던 거 주운 건데, 뭐.
랭거:... 별 거 아니야... 그냥 잊어. 베인, 미안한데 생각보다 많이 피곤해서 이만 가줘야겠다. (당신 등을 밀어 휴게실 밖으로 내보내고 싱긋 웃어) 다음에 또 와주길 바래.
엘타 베인:
지능
기준치: |
85/42/17 |
굴림: |
27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아까 그 쪽지... 책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당 내부 이와 관련된 책이 있다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이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당신은 랭거 몰래 뒷문을 통해 성당 지하에 있는 서재로 향합니다.
몇 개의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꽤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입니다.
당신이 올 때면 언제나 이곳은 책들로 가득했으니까요.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3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은 몇 가지 책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엘타 베인:
자료조사
기준치: |
60/30/12 |
굴림: |
3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나무 책장 틈 사이에 끼워진 또 다른 페이지를 발견합니다.
필기체로 적힌 글자를 보아하니 이건 책에 인쇄된 것이 아닌 타인이 직접 쓴 문장 같습니다.
엘타 베인:
지능
기준치: |
85/42/17 |
굴림: |
46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 때, 지하실의 계단 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숨거나,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일의 진척이 너무 느려. 언제까지 질질 끌 생각인 건가?”
늙은 남자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선명한 랭거의 목소리.
랭거는 서재에 들어와 탁자 위에 있는 공책을 집어듭니다.
랭거:여기에 내가 한 모든 게 적혀 있으니 상황을 확인해보세요.
이곳에 아직 남아있다는 걸 들킨다면... 글쎄요.
성당에서 빠져나와 마주한 마을은 휑하기만 합니다.
버석버석한 땅과 동물의 시체, 다른 곳에서 온 의사들은 죽은 전염병 환자들을 병원으로 옮깁니다.
고딕 건물들의 벽에는 생기를 잃은 담쟁이 덩굴들이 툭, 툭, 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제 햇볕을 받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무장된 성당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남았습니다.
생존자들이 모인
마을 회관으로 가볼 수 있습니다.
마을 회관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그 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버리고 떠날 것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는 중입니다.
한구석에는 꼬마 아이들이 두어 명 웅크린 상태입니다.
논의를 벌이는 어른들에게 가보거나, 아이들에게 가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조용히 구슬로 저들끼리 놀고 있습니다.
가만히 다가온 당신을 발견하면 곧 한 아이가 울먹이며 묻습니다.
아이들은 무어라 무어라 이야기를 떠들지만 울음 소리에 뭉개져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엘타 베인:
설득
기준치: |
65/32/13 |
굴림: |
89 |
판정결과: |
실패 |
괜찮아 안 죽어. 모두가 노력하고 있잖아?
아이는 더 큰 소리로 울다가 겨우겨우 진정한 한 아이가 중얼거립니다.
아이:저희 말이에요, 매일 기도하러 갔어요. 성당에 밤마다 갔어요. 우리를 구해달라고 신한테 기도하러 갔어요.
엘타 베인:그랬니? 착한 아이구나. 신은, 기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네 기도를 못 들으시는 것 뿐이야. 그래서 계속 기도해야해. 네 간절함이 신의 귀에 닿을 때까지. 그러니 계속 기도해줄래? 신이 네 기도를 들을 수 있도록.
아이:네... 마을에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서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했어요. 역시 그런거죠? 계속 열심히 기도 할게요. 신부님도 똑같은 소리를 했어요. 우리한테 전부 괜찮아질 거래요. 그리고 자꾸 미안하대요. 왜 미안하다 그랬을까요? 모르겠어요.
엘타 베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신부님은 신과 가까운 사람이잖니. 하지만 신부님은 신처럼 우릴 도와줄 수 없으니까 미안하다고 하신거야. 참 친절하신 분이지?
아이:(얌전히 쓰다듬 받다가 입을 열어) 맞아요! 신부님이랑 신님은 비슷해요. 이미 많이 도와주고 계신데... 미안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친절하셔서 탈이라니까요... 아, 제가 이런 말한 건 신부님한테 비밀이에요?
엘타 베인:신부님이 들으면 좋아하시겠네. 우릴 도와주신 만큼 우리도 신부님을 도와주면 될거야. (검지를 입에 대며 웃는다) 그래,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할게.
아이:그래도 부끄러우니까 비밀로 해주세요! 그래서 요즘 몰래몰래 도와주고 있어요. (장난스러운 웃음소리 내고 따라 행동해) 네! 비밀!
어린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꺄르륵 웃으며 다른 아이들에게로 향합니다.
엘타 베인:애들은 웃어야지. (아이들을 한 번 보고 어른들에게 다가간다)
어른들에게 다가갈 시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이곳을 당장 떠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쳐봤자 전염병은 이 나라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어른:그거 들었어요? 뱀의 저주라고. 그 저주가 한 번 퍼지면 사람들을 다 죽이고, 마을을 멸망시킬 수가 있대요.
악마야. 분명 악마가 이곳에 들어온 게야. 악마가 저주를 퍼트린 거야.
엘타 베인:
정신
기준치: |
85/42/17 |
굴림: |
33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검은 수도복의 끝자락만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갑니다
엘타 베인:(아니겠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어른:악마가 우리 마을에 들어왔어! 그 때문에 이렇게 역병이 퍼진 거야. 저주로 우리 마을을 몰살 시키려고!
엘타 베인:일단 진정하세요. 이건 악마가 아니라 전염병일 뿐입니다. 곧 해독제가 나올 거예요.
어른:(혀를 쯧 차고) 그 전염병을 악마가 퍼트렸다니까?! 해독제는 무슨 ... 나왔으려면 진작에 나와야지 이 마을은 망했어! 얼른 떠나버리던가 해야지 원... 갈수록 시체만 늘어가는데.
엘타 베인:(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른 곳도 이 마을과 같은 건 매한가지인데 어딜 가시려고요. 차라리 이 마을에서 버티는 게 안전할 겁니다.
어른:그쪽은 그렇게 하던가! 몰라! 나는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악마가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 너도 봤잖아, 그 악마를. 조심해!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회관을 나서면 구석에 앉아 중얼중얼 알 수 없는 내용의 기도를 흘리는 늙은 비쩍 마른 사내가 보입니다.
악마가 저주를 퍼부은 게야, 그래서 우리가 다 이 모양이 된 거라고!
공포에 경직된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시야에 담깁니다.
엘타 베인:(사내에게 다가가며) 악마는 없습니다. 이건 단순한 전염병일 뿐이고 곧 해독제가 나오면 다 해결될 일이에요. 공포에 잠식되지 마세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 없다는 마냥 남자는 정신이 나간 것처럼 당신의 두 팔을 붙잡고 악을 씁니다.
사내:악마를 죽여야 해! 악마를 죽여야 해!
성서를 읊고 칼을 들어. 그를 코앞에 두고 죽이겠다 알려야 해.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다. 이름을 부르고 사형을 선고해야만 한다.
장정이 나타나 사내를 억지로 당신에게서 떨어트리려는 순간,
너무나도 굳건한 목소리의 속삭임이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바로 이 공포에 사로잡힌 사내의 것이었습니다.
사내:저주가 사라질 방법은 주체를 죽이는 것뿐이라고, 친구...
엘타 베인:(사내를 뒤로한 채 병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병원은 환자들의 곡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생명의 숨소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곳곳을 소독하고 있습니다.
입구를 기웃거리는 당신을 향해 간호사가 다가와 이 이상 들어오면 안 된다고 경고 합니다.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18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어쩐지 시체들이 기괴한 표정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염병 특유의 반점이나 괴사는 없으나, 모두 충격적인 걸 본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엘타 베인:
SAN Roll
기준치: |
85/42/17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병원 입구에 나오면 벽에 붙은 전단지들과 익숙한 수도복의 옷자락을 발견합니다.
의사와 대화를 하는 모습은 유려하기만 합니다.
낮에 피곤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진심으로 병세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엘타 베인:
정신
기준치: |
85/42/17 |
굴림: |
8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어디에서부터 흘러나온 공포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랭거의 주머니에 리볼버나 칼이 있을 것만 같은 기묘한 감정이 등줄기를 훑습니다.
저 검은 수단이 유독 시커멓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단지를 보거나, 랭거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랭거를 관찰하고 있으면 문득 랭거와 눈이 마주칩니다.
당신을 발견한 랭거의 표정이 오묘해지더니, 이내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랭거:여기는 어쩐 일이야? 집에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엘타 베인:그냥, 상황이 좀 나아졌나 보려고 왔지.
랭거:아... (고개 살짝 끄덕여) 아쉽게도 평소랑 똑같아. 아까는 갑자기 쫓아내서 미안해.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서... 대신 간식 줄테니까. 응?
엘타 베인:(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내가 간식만 주면 다 되는 사람으로 보이냐? 달달한 걸로 준비해놔.
랭거:(멀뚱히 보다가 실실 웃어) 맞는 것 같은데? 네네~ 형제님. 구하기 힘들지만 열심히 구해볼게. 아, 종이 뺏어간 것도 미안해.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닌 책이라 ...
엘타 베인:(눈을 가늘게 떴다가) 뭐, 됐어. 안 그래도 주변에서 악마니 뭐니 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일지 뻔하지. 조심히 다녀라.
랭거:... 악마 ...? 누가 악마라고 말하고 다녀? (미간 살짝 구겼다가 당신보고 미소 지어) 걱정 고마워.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까 베인도 조심해.
엘타 베인:힘든 세상이니까. 다 악마가 한 짓이라고 원망이라도 하고 싶은 거지. (어깨 으쓱이며) 나야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 걱정 말고.
랭거:... 그래 ... 이해해야지. (당신 어깨 톡톡 치고) 걱정이 되는 걸 어떻게 안 해? 내가 말했잖아. 전염병은 사람을 골라 가지 않는다고. 일단 나는 할 일이 더 남아서, 먼저 가볼게.
엘타 베인:(랭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전단지로 시선을 돌린다)
전단지를 자세히 보면 광고물이 아닌 성서의 구절을 따온 종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7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전단지 뒤에 적힌 또 다른 내용을 발견합니다.
미심쩍은 글귀와 미심쩍은 랭거의 태도가 자꾸 자신의 신경을 긁습니다.
그때 주위 간호사와 의사들이 말하는 게 들립니다.
엘타 베인: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랭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간호사:정말 착한 분이시지, 매일 와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의사:요즘 항상 밤을 새는 것 같으시더라고. 어쩐지 수척한 기색이던데, 바쁜 일이 생긴 걸까?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습니다.
엘타 베인:(간호사에게 다가간다) 신부님이 여기 매일 오시나요?
간호사:아, 네네. 지금 병원에 일손이 부족해서요. 부족한 일손을 보태주러 자주 오세요. 전염병이 참 무섭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엘타 베인:참 무서운 병이네요. 아픈 것도 알지 못한다니. 간호사분들과 신부님은 괜찮으신 거죠?
간호사:저희는 아직 괜찮은 것 같아요. 신부님은 ... 일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오히려 걱정이네요. 무섭죠? 이게 끝이 아니래요. 어느 순간 서서히 상대에 대한 미움으로 미쳐가고 독이 온몸에 퍼진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다 불시에 사망한다고 들었어요. 엘타님이니까 알려드리는 거에요.
엘타 베인:그건 다행이군요. (잠시 생각하다가) 상대에 대한 미움이라, 이상한 증상이네요. 일단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건강하시길 기도하죠.
간호사:누군가를 지독히 저주하고 싫어하게 되는 것이 공통점인데, 이건 병이 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나 추정하고 있어요. (아차하고) 너무 주절주절 떠들었나요? 저희야말로 감사드리죠. 엘타님도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엘타 베인:(간호사에게 짧게 인사를 하곤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당장 낮에 당신을 쫓아낸 사람은 랭거가 아니었던가요.
랭거:늦은 시간에 갑자기 미안해. (...) 새로운 책을 하나 건내주러 왔어. 낮에 관심있는 거 같길래.
엘타 베인:찾아온 건 괜찮은데... 새로운 책이라니?
랭거는 당신에게 새로운 책을 건네주러 왔다고 방문한 이유를 댑니다.
랭거:...그냥. 평범한 책이야. 별로 안 내키면 다시 가져갈게. (당신의 안색을 살피는 듯 하고) 몸은 괜찮아? 아까 병원에서 보이던데 아픈 곳이 생겨서 간 거야?
엘타 베인:가져갈 필요없어. 어차피 집에 있으면 심심할텐데 잘 됐네.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며) 아파서 간 건 아니야. 그냥 확인 차 간 거니까. 아직 건강해.
랭거:(살짝 미소 짓고) 다행이다. 나 잘한 거 맞지? (안심하는 듯 하다가도 당신의 표정을 확인하는 듯 해) 아직인 건 뭐야... 계속 건강해야지. 계속 반복하는 말이지만 전염병을 조심해, 베인.
엘타 베인:그래, 잘했다.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혹시나 내가 전염병에 걸렸을까봐 그러냐? 남의 얼굴을 뭐 그리 뚫어져라 쳐다봐. 항상 조심하고 있으니까 걱정하는 것 좀 줄여라.
랭거:(실실 웃다가 씁쓸한 표정하고) 응, 걱정돼서. 항상 조심해. (시선 슬쩍 돌리고) 내가 뚫어져라 쳐다봤어? 전혀 몰랐네. 줄이고 싶다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닌 걸... (한숨 쉬어)
엘타 베인:(팔짱을 끼곤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춘다) 가끔보면 너무 뻔하다니까. 하여튼 잔걱정이 너무 많아서 문제야. 나보다 너를 더 걱정하라고 거기 병원도 매일 가는 것 같던데.
랭거:그러니까 잔걱정이 아니래도... 나는 도와주러 가는 거지 내가 아파서 가는 게 아니야. 그리고 보다시피 (...) 멀쩡하잖아? 나는 괜찮지만 당신은 안돼. 있지 베인. 신부는 사람들의 고해를 들어주지만, 내 고해를 들어줄 사람은 신밖에 없다?
랭거:만약 당신은 당신의 친구라 생각한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든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엘타 베인:그건 또 무슨 이상한 소리야? 뭐, 일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겠지만 조금은 서운할 것 같긴 하네.
랭거:...이상...한...질문 이었나? (하하) 그래. 당신은 역시 선한 사람이구나. 이왕이면 용서도 해주면 좋겠다. 그치?
랭거는 한참동안 당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무언가 굳게 결심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사라집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여도 마을에서의 일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끔찍한 저주가 사라지기라도 하나?
이야기 하는 당신을 믿어줄 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병원에서 보았듯이 랭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신뢰는 두텁기 그지 없었습니다.
즉, 이 일의 결정권은 오롯이 당신에게만 있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랭거를 찾아가봅시다.
얼굴을 봐야 무엇이든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무언가 당신의 목덜미를 부드러이 감싸쥐더니, 당신의 손에 칼을 쥐여줍니다.
어렴풋이 눈꺼풀을 들어올리니 방안이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고 공기 중에 열기가 떠다닙니다.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봤자 이곳에 화재를 진압할 인원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마을의 몇 안 되는 생존자가 양동이로 물을 퍼 창밖에서 당신의 집에 난 불을 끄려는 얄팍한 시도를 하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점점 시야가 감깁니다.
그 때 누군가 당신을 끌어안고 창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신선한 산소가 폐부에 차고 나서야 죽을 듯이 기침을 내뱉었습니다.
여전히 불에 타오르는 집이 보이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재에 그을린 모습으로 어쩐지 복잡한 표정입니다.
엘타 베인:(콜록) 아,니... 불은, 싫어.
랭거:(...) 미안. 미안해. 물이라도 줄까?
엘타 베인:네가 왜, 미안하냐... (콜록) 좀, 부탁할게.
랭거:아... 응. (옆에 준비라도 해뒀는지 생수병을 까서 당신 입에 대주고 침묵해)
엘타 베인:(힘겹게 물을 넘기고 숨을 고른다) 하아...
랭거:어때, 좀 나아? (시선은 맞주칠 생각도 없는지 방금까지 당신의 집이었던 것을 보며 말한다.)
엘타 베인:그래, 이제 좀 살 것 같다. (흐린 눈으로 집 쪽을 봤다가 시선을 내린다) 넌 어디 다친 데 없냐...
랭거:... 나는 별로 상관없잖아. 애초에 조금 후끈한 거 빼고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 그럴 시간에 당신이나 더 걱정하라고.
(...) 괜찮다니까 나는 이만 가볼게.
중간에 갑자기 랭거는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히 등을 돌려 가버립니다.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엘타 베인:
지능
기준치: |
85/42/17 |
굴림: |
4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당신의 집에 불을 지른 자가 랭거라는 사실을 깨닳습니다.
아, 하지만 이것으로 당신은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문득 당신은 불에 의해 쓰러진 집의 나뭇더미 아래에 어떤 물건이 떨어진 걸 발견합니다.
품에 숨길 수 있을 만한 크기와 누군가의 명칠에 찔러 넣으면 단박에 숨통을 끊을 만한 날카로움.
엘타 베인:
SAN Roll
기준치: |
85/42/17 |
굴림: |
25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불타버린 집을 뒤로 하고 마을 회관으로 이동합니다.
여분의 이불과 베개를 받았지만 잠이 올 턱이 없습니다.
회관에 누우면 몇 개 전부 불타지 않은 당신의 물품을 마을 사람이 가져다줍니다.
문득 짐을 바라보면 처음 보는 것이 있습니다.
엘타 베인:무슨 책이지... (책을 꺼내 펼쳐본다)
수기를 펼쳐 읽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엘타 베인:
지능
기준치: |
85/42/17 |
굴림: |
69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때가 랭거가 성당에 도착한 날과 동일함을 떠올립니다.
엘타 베인:...랭거가 그럴 리 없어. 설마 랭거가, 아니야.
새벽이 무르익지만 잠은 여전히 오지 않습니다.
어쩐지 울분에 찬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습니다.
엘타 베인:
근력
기준치: |
80/40/16 |
굴림: |
5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미미한 흐느낌이 귀에 들어오나 싶을 무렵 인기척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목에 남아있는 감각만큼은 너무도 선명합니다.
마을 회관에서 겨우 이불을 덮고 잠에 들었다 언제 깨어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말세라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성당에 기도를 하러 사라졌습니다.
집은 잃은 지금으로선 당신도 몸을 위탁할 곳이 회관과 성당밖에 없습니다.
딱 이 시간부터 고해소에 랭거가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랭거와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주를 몰고 다니는 주체를 죽이라는 사내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악마를 죽이라는... 그를 위해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던......
성당에 도착해 고해소로 향하면 작은 공간이 나옵니다.
신자가 들어가는 장소에 몸을 욱여넣으니 닫힌 고해창 너머 랭거의 잠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엘타 베인:...가장 친한 친구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져 버렸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들어버렸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될 터인데.
그러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그 사람은 계속 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버렸습니다, 신부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랭거:...이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 괜찮습니다. 신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겠나요. 이렇게 고해하러 왔으니 용서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 아니, 형제님이 하고 싶으신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신께서도 그걸 바라실테니까.
엘타 베인:...신께서 제 바람을 들어주실리가 없습니다. 제가 행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신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일테니까요. 저는 악마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악마를, 지독하게 사랑하고자 합니다. 절대 용서받을 수 없겠죠. 알고 있습니다. 가장 순수한 자와 나눴던 말들이 모두 위선이 되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저는, 악마를 사랑하고야 말았는 걸요. 저에게는 그 누구보다 투명한 악마를 말이죠.
랭거:들어주실겁니다. 형제님은 선한 사람이니... 충분히 들어주실 거에요. 무슨 선택이 되었든 당신의 선택이 정답이 되겠지... 악마를 사랑하는 대신 매일 고해소로 와서 고해를 해주세요. (...) 그럼 괜찮을겁니다. 다 괜찮을 거에요.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신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요. 오히려 너무 사랑했으면 사랑했지. (...) 그 악마에게 배신감이 들지는 않던가요?
엘타 베인:선한 사람인가요... 저는 두렵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이상 그 악마를 보지 못하는 눈이 될까 하루에도 수십번 그 발자취를 쫓게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두렵습니다. 남들에겐 역겨운 질병일지라도 제 눈에는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투명해보이기에, 저는 기꺼이 죄인이라도 될 수 있는 거겠죠. 제가 신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 악마와 함께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안 된다면 더 큰 죄악을 범해서라도, 수백번의 고해로도 사라지지 않는 죄를 지어 악마를 쫓고 싶습니다. 이런 저를 사랑하는 신에게, 저의 진심이 닿을 때까지. 하, 어찌 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화마로 모든 걸 빼앗긴 저에게 다시금 화마를 불러온 자를. 하지만 우습게도 그렇기에 안심했습니다. 적어도 악마라면, 마귀에게 빼앗기진 않겠지요. 결국 저에게 오롯이 남을 수 있는 건, 오직 악마밖에 없는 겁니다. 기구한 운명이지요.
랭거:형제님이 생각하기엔 아닌가 보네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신도 당신의 편을 들어줄 거에요. 혹시 아니더라도 ...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언젠가... 언젠가는 꼭 바램을 들어주는 게 신이라는 존재니까. 믿고 기다려주세요. 이 역병도 금방 사그러 들테고 모두가 예전처럼 (...) 화목하게 웃는 날이 다시 돌아올 올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 맡기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판단을 믿습니다. 죄인이면 어떤가요. 우리는 신의 발 아래, 태초부터 모두 죄인입니다. 잘못을 고하는 것부터 큰 용기에요. 그 악마...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현혹되지 않는 것이 좋을겁니다. 정신 바짝 차리시고 홀리지 마세요. 그게 당신에게도 모두에게도 좋을테니까. 진심은 언젠가 닿기 마련이니... 당신의 악마에게도, 당신의 신에게도 모두 닿았으면 좋겠군요. (... ... ...) 유감이네요. 얼른 당신이 회복하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럴까요? 당신의 곁에는 항상 신의 가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사악한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명심하세요.
엘타 베인:그 자리에 당신은 있을까요...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가 자리를 벗어난다)
엘타 베인: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92 |
판정결과: |
실패 |
엘타 베인:
듣기
기준치: |
60/30/12 |
굴림: |
3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랭거: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엘타 베인:
언어(외국어) Roll
기준치: |
1/0/0 |
굴림: |
20 |
판정결과: |
실패 |
고해소를 빠져나와 성당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성당 내부를 살피면 단상 위 제대에 놓인 일기장이 보입니다.
실수로 떨어트린 듯 구석에 아슬하고 어설프게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일기장은 랭거가 이곳에 처음 온 날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타 베인:
SAN Roll
기준치: |
85/42/17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너무나도 확실한 단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강타합니다.
제단 앞에 서 있는 당신이 등을 돌리면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과 성당 문 입구에서 뿜어져나오는 모든 빛을 온몸으로 받고 서 있는 랭거가 충격으로 점철된 눈으로 당신을 봅니다.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83 |
판정결과: |
실패 |
엘타 베인:
관찰력
기준치: |
75/37/15 |
굴림: |
45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신이 죽어야 세상이 구원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분은?
눈앞에 떨어진 당신의 운명을 마주하게 된 기분은?
모든 사실을 당신이 알았다는 것을 깨달은 랭거는 전부 내려놓은 얼굴로 웃습니다.
랭거:... 봤구나. 아무것도 몰랐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면 나만 미워하고 원망하고 끝낼 수 있었을텐데. 왜... 왜 계속 알아내려고 하는 거야. 이런 거 함부로 보지 말란 말이야.
엘타 베인:바보같은 사람. 눈앞에 악마를 두고도 죽이지 못하는 바보. 악마에게 악마라는 소리를 듣는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모든 걸 알고 나니까 세상에게 부정당하는 기분이야. 모두 우연이 아니었어. 마귀에게 먹힌 악마라, 웃기지 않아? 차라리 모르고 끝났으면 행복했을까 싶지만, 역시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신의 사랑을 받는 건 너였어.
랭거:맞아. 진짜 바보같다... 신부인 척 하더니 진짜 맛이라도 들린건가? 왜 이렇게 유약해졌을까. (...) 당신은 악마가 아니야. 이렇게 선한 사람이 어떻게 악마야. 오히려 악마는 내 쪽이 아니려나? 모두가 착각하고 있는 거지. 신까지도. 내가..! 내가 이럴까봐 얼마나 숨기려고 노력했는데...! (...) 미안, 당신 잘못이 아니야. 이 빌어먹을 세상 탓이지. 아무것도 몰랐잖아. 그치? 당신은 아무잘못도 없어. 괜찮아. (헛웃음을 뱉어) 허... 내가 신의 사랑을 받았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마. 그랬으면 지금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그 망할 신 때문에! (...) 내가 당신을 정말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응? 베인...
엘타 베인:널 투명하다고 느낀 이유가 있었어. 처음부터 진짜 악마는 나 였으니까. 미워서 미칠 것 같으면서도 악마처럼 지독하게 널 사랑했고. 나 자신이 말할 수 조차 없는 검은색이니 넌 투명하게 보였지. 모두 착각이 아니야. 나라는 악마는 모든 걸 예견하고 있었던 거였어. 그래서, 널 홀린 거야. 내 속에 있는 악마가. 아아, 난 결국 너라는 영혼에게 죄악의 손길을 뻗쳐버렸구나. 가장 순수한 자에게 거짓된 말을 속삭인 나는 틀림없는 악마로 보였을 거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옮겨 네 앞으로 다가간다) 아니, 저주를 받은 악마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저주받지 않은 너는 분명 신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거야. 나라는 악마는 그것도 모르고 너와 함께라면 이 세상과 나는 저주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 나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가 되었지만, 이것만은 진실이라고 믿어줘. (마귀에게 먹힌 그 순간부터, 잔떨림이 멈추지 않았던 손으로 네 두 손을 잡고 제 목에 칼을 겨눈다) 널 위해, 이 세상을 위해 그리고, 신에게 네 믿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네 눈앞에 있는 악마를 죽여.
랭거:내가 투명하다고 ... 그렇게 느끼는 사람. 이 마을에 당신밖에 없을거야. 당신이라고 악마이고 싶어서 악마겠어? 그런 역할을 쥐어준 신이 증오스러운 거야, 나는. (하하...) 그래, 넘어갔지. 그래서 당신을 죽이려고 시도만 했을 뿐 결국 다시 내 손으로 살려놓고. (...) 다들 어이없게 생각할 거야. 남들을 도와주는 척.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면서 내가 과연 진심이었을까? 사실 이 마을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이젠 당신이 아니면 안돼. 어떻게 내가 당신을 죽여? 순수한 자라... 나는 그냥 이기적인 죄인일 뿐이야. 고해? 웃기지 말라고 그래. 잘못한 쪽은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이야. (푸핫 웃어) 근데 조금 이상하지 않아? 내가 이곳에 온 날짜랑.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날짜. 똑같잖아? 당신이 악마가 된 건 어쩌면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 마을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도. (...) 사랑을 받았으면 이렇게 괴로울리가 있나. (웃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인상 찌풀이며 칼 쥔 손을 내려쳐. 은색 빛으로 반짝이는 칼은 저 멀리 내동댕이 쳐졌다.) 웃기지 마. 내가 죽일 것 같아? 당신이 죽는다고해서 이미 멸망한 세상이 돌아오는 일을 없어. 애초에 당신 잘못이 아니라니까!
(텅 빈 제 손에 당신 얼굴 감싸고 싱긋 미소 지어) 화내서 미안해.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 어쩔 수 없어. 죽게 놔두지 않을거야. 그럴 생각하지도 말고, 알았지? (툭, 당신을 가볍게 밀어 넘어뜨리고는 위에 올라타 속삭여) 내가 베인을 죽이고 혼자 살아갈 수 있을리가 없잖아. 왜 그런 선택을 하라고 그래? 고해했잖아. 나를 죽이는 거 아니었어? (고개를 살며시 틀고 당신과의 거리를 더욱 좁혀 천천히 눈을 감고 입을 맞춘다.) 나 혼자 두고 가지마. 베인.
엘타 베인:...악마이고 싶을 리가. 난 이 마을에서 조용히 사는 걸로 만족했지만, 세상이 나를 악마라 하는데 악마가 되어줄 수밖에. 그래도 너만은, 날 사람으로 봐줘서 다행이야. 그런 네가 신까지 증오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이 죄는 영원히 갚을 수 없겠지.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좋아. 이렇게 너를 만났으니까.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영혼. (방긋 웃으며) 내 악마가 너의 투명한 영혼에 반응한 거겠지. 이건, 어찌보면 운명인 거야. 네가 오지 않았어도 내 악마는 어떻게든 너를 끌어들였을 테고, 결국 이렇게 됐겠지. (날아가는 칼을 멍하니 보다가 어딘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네 눈을 응시한다) 정말, 잔인하구나. 끝까지 너한테 휘둘리는 내 마음을 알긴 해? 이만 보내주겠다고 하잖아. 악마에게 잡힌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야. 내가 없는 세상에서, 이런 저주 따위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그런데 왜... (어느새 반전된 시야에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흐려진 너를 올려다본다) 잔인한 인간. 이젠 죽일 수도 없는 걸 이미 알면서. (가까워지는 새빨간 눈동자에 눈을 감으며 작게 흐느낀다) 정말, 진짜 악마는 너야.
랭거:세상이 뭐라고 해도 듣지마. 내 말만 믿어줘. 내 말만 들어. 그렇게 해줄 수 있잖아. 사람이니까 사람으로 볼 뿐이야. 당신도 다치면 아프고 상처도 받고 감정도 느끼는데 그게 진짜 악마일까? (...) 나는 원래 신따위 믿지 않아.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있었다면 진작에 구원해 줬어야지. 갚지 않아도 돼. 베인은 죄 없어. (떨어져나간 검 힐끔 바라보고) ... 정 안되면 내가 다 짊고 가면 되니까. 아무 걱정도 하지마. 알았지? (따라 방긋 웃고) 미안하지만 베인, 내가 오지 않았다면 당신 마을은 생각보다 멀쩡했을 거야. 적어도 지금 보다는. 내가 증폭기 같은 역할을 한 것 같아. 처음에는 나도 별 생각 없었지만 (...) 아까 일기 봤지? 기록하다 보니까 깨닳게 되는 것도 있더라고.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미소 지어) 그래, 난 잔인하고 이기적인 인간이야. 어쩌면 악마보다 더 그럴지도 모르지. 차라리 한날 한시에 같이 죽는것도 나쁘진 않네. 그렇지 않아? 한 마을 성당에 착하디 착한 신부님이 사악한 악마를 처형하고!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뭐 이런 걸 바라는 거야? 베인... 난 당신이 해달라고 하면 해줄 수 밖에 없어. 하지만 후회는 하지마. (당신의 표정이 안 좋아질 수록 더욱 웃어보이고) 왜 울고 그래... 마음 약해지게. (당신의 눈 위에 살짝 입 맞추고) 맞아, 당신은 날 죽일 수 없어.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더 슬프게 느껴지네. 결국 혼자 남는 건 나뿐인가? (...) 원래 인간은 악마보다 더 사악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악마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선택의 시간이야, 나의 악마님. 나는 당신이 원하는대로 할게. 어떡할래? (제 손으로 당신의 눈위를 살짝 덮는다. 덕분에 제 얼굴이 무슨 표정인지 당신은 모르겠지. 물론 나도 내 표정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엘타 베인:나도 네 말만 듣고 싶지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저주에 걸린다는 걸 잘 알잖아. 모든 것을 불태우다 태울 게 없어지고 나서야 사그라드는 화마처럼, 나도 내 주변의 모든 것을 태우고 있어. 거기에 너까지 포함되는 날엔, 난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오직 너만이 내 죄를 판가름 할 수 있고 오직 너만이, 내가 용서를 빌게 하니까. (눈썹을 찡그리며) 넌 인간이야. 그런 네가 무슨 죄를 짊어지겠다는 거야. 이건 내 몫이야. 내가 지옥까지 갖고갈 내 죄. (옅게 숨을 내뱉는다) 네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이 이렇게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는 걸 몰랐을 거야. 악마에게 빛을 알려준 인간이니, 넌 증폭기 같은 게 아니야. 그저 악마를 구원하는 빛이지. 너라면, 너와 함께라면 나같은 악마라도 인간이라고 믿게 돼. 너와 평범하게 사는 미래를 꿈꿔보고 기대하게 돼버려. 착한 신부님에게 처형 당한 사악한 악마가 내게 더 어울린다는 걸 앎에도. (눈에 고인 물기를 눈꺼풀을 몇 번 움직이는 걸로 떨쳐내고 네 웃음을 바라본다) 넌 인간이고, 난 악마니까. 애초에 같이 있으면 파멸만이 예정된 관계지. 어차피 죽게 될 거라면, 네 손으로 죽고 싶어. 너와 단 둘이 있는 이 공간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이 곳에서. (네 손 밑에 가려진 두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팔을 뻗어 네 뒷목에 감는다. 그대로 팔을 당겨 몇 번 입을 맞추다 떨리는 입술을 짓씹으며 겨우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아... 가능하다면 다른 것 따위 다 던져버리고, 너와 함께 살고 싶어. 악마 주제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그래도 단 한 번은 괜찮잖아. 이번 단 한 번만, 내가 원하는대로 결말을 정하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눈위를 덮은 네 손을 잡아내리곤 다른 손으로 네 뒷목을 당겨 다시 입을 맞춘다. 다급하게 혀를 얽어매고 갈증이라도 나는 듯이 매달리다가 천천히 손에 힘을 풀고 완전히 눕는다) 내 마지막 욕심이야. 나같은 악마가, 너라는 인간과 함께 살아도 될까?
랭거:원치 않은 저주를 거는 게 많이 힘들 수 있어. 그래도 ... 세상에는 많은 인간들은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고, 결국엔 저주도 하잖아? 그들에 비하면 당신은 너무 선한 사람이야. 악마같지도 않은 이에게 악마라니. (어이없다는 듯 웃고) 이게 무슨 장난일까... 나는, 나는 진짜 괜찮아. 절대로 베인보다 먼저 죽지도 않을거고.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좀 더 편하게 생각해도 돼. (피식 웃어) 베인, 당신도 방금전까지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잖아. 내 일기를 보지만 않았어도 당신은 지금 내 심장에 칼을 꽃아놓지 않았을까? 조금 더 잘 간수할 걸 그랬어. 답지 못하게 이것저것 흘리기나 하고... 생각해보면 내가 문제였지. 처음부터. 사랑하지 말 걸. 소중하게 생각하지 말 걸. 그냥 ... ...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처형시킬 걸. 만약 그랬으면 지금 같은 느낌 전혀 받지 못했겠지? 편하게 당신을 죽이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악마에게 사랑에 빠져가지고. 나도 참 미련하다. 빛이라... 그럼 구원받은 악마가 되는 건가? 내가 뭐, 신이라도 되는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 내가 신이었으면 이딴 짓 절대 안 해. (...) 당신도 처음부터 악마였던 건 아니야. 질 나쁜 저주에 걸려서 악마 비슷하게 된 거지. 진짜 악마도 아니고. (...) 더 빨리 만났더라면 뭐가 바뀌었을까. 차라리 내가 저주에 걸리는 편이 나았을텐데. 그랬으면 ... 깔끔하게 사라져 줄텐데. (가볍게 한숨 쉬고) 있지, 신이라는 것들은 장난을 좋아해. 마을 사람들도 매일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고해하고... 그러면 뭔가 달라지겠지. 언젠가는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사실은 신들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를 내려다 보면서 말이야. 그럼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우리끼리 살아볼까.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 어제 봤던 그 아이들도 죽는 거야. 겁에 질려 이사갈까 했던 그 어른들도 죽는 거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들도 죽어. 물론 당신과 나도 결국엔 죽게 되겠지. 정말 그래도 괜찮아? 우리 때문에 모두가 죽게 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꿋꿋하게 말하던 목소리는 살짝 떨려가고 있다.) ... 악마는 악마구나. 솔직히 말해서 죽여달라고 할 줄 알았어. 마음도 꽤 다 잡고 온건데... 당신이 이렇게 나오면 다 의미없어 지잖아... (당신 눈 위에 뒀던 손을 때자 눈가가 붉어져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안 된다고 하면...? 나는 받은 임무가 있어. 수행하지 못하면 ... ... 어차피 난 죽게 될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엘타 베인:이젠 뭐든 상관없어. 모두가 죽게된다면, 죗값은 지옥에서 받지 뭐. 악마는 인간과 함께 사는 걸 택했어. 영원히 한 인간만을 사랑하면서. 그 인간만을 위해. 그걸 막는 모든 것은, 저주로 삼키면서. 이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거야, 그렇지?
랭거:죗값은 지옥에서 받는다... (풋 웃고) 그럴까? 악마에게 잘 맞는 최후네. 그래,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이미 세상은 멸망했고 우리들은 남아서 살아갈 뿐이야. (...) 도망이라도 칠까?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되었음을 자각하게 된 거.
색색의 유리 조각들이 통과시킨 빛이 시야를 어지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도 똑바로 보이는 자는 단 한 명, 랭거.
그리고 이곳에 있는 것은 가짜 신의 사자와 칼, 제단, 도망칠 길, 그리고 악마.